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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 붓고 담뱃불로 지져… 경찰도 혀 내두른 16세 소년들의 잔혹 범죄

입력
2023.01.28 19:00
수정
2023.01.2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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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만남으로 성인 남성 유인해 무차별 폭행
석방된 뒤 자신들 범행뉴스 보고도 더 큰 범행
알몸 촬영에 영화에서 볼 법한 생수고문까지
계좌이체·현금서비스에 대출도 받게 해 갈취
경찰과 기자들도 잔혹함에 충격·탄식 쏟아내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 전경. 네이버 지도 캡처

대전지법 천안지원 전경. 네이버 지도 캡처

“저는 소년범을 혐오합니다.”

지난해 넷플릭스를 통해 국내외에 선보여 관심을 끌었던 ‘소년심판’에서, 주인공 심은석(김혜수 역) 소년부 판사의 이 대사는 드라마 초반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드라마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범죄를 정면으로 조명했고, 그는 “나중에 재판 다 끝나고 나서 ‘아 법 참 쉽네’ 우습게 여기면 그땐 어떡합니까”, “쟤들 커서 더 큰 범죄로 피해자들 계속 생기면 그땐 누가 책임집니까”라고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의 이런 발언에는 성인 범죄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흉악해지는 소년범죄를 관대하게만 바라봐선 안 된다는 의지가 짙게 배어 있다.

소년 강력범죄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 2020 범죄분석’에 따르면, 10년 동안 소년들이 저지른 살인·강도·성폭력·방화 등 강력범죄는 28.2% 증가했다. 같은 기간 무단횡단과 무면허운전 등 교통범죄는 41.7%, 사기·절도·횡령 등 재산범죄는 18.2% 줄었다.

초등학생 여자 후배 동원한 '조건만남' 특수강도

지난해 충남 천안에서도 16세 소년들의 범행이라고는 믿기 힘든 흉악한 사건이 발생했다. 소년들은 초등학생에 불과한 13세 여자 후배를 조건만남에 이용하고, 금품을 빼앗기 위해 성매수를 하려는 남성의 몸을 담뱃불로 지지는 등 잔혹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범행 수법과 태연함에 경찰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중고교 친구 사이인 A(17)군 등 5명은 지난해 2월 25일 충남 천안 동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이들은 그날 새벽 조건만남에 나선 남성을 협박해 돈을 빼앗다가 피해자 지인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13세 초등학생인 여자 후배를 내세워 피해자를 유인한 뒤 마구 폭행하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고 협박해 현금 100여만 원을 빼앗았다. 휴대폰으로 피해자의 알몸을 촬영하기도 했다.

성에 안 찼는지 모텔 객실에 있는 컴퓨터로 1,000만 원을 대출받도록 하려다 실패하자 피해자 지인에게 연락해 돈을 빌리라고 협박했다. 다행히 이들의 범행을 눈치챈 지인의 신고로 피해자는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A군 등은 지난 1월 여자 후배를 성폭행하고, 벗은 몸 위에 음식물을 올려놓고 먹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에 붙잡히면서 끝날 것 같았던 16세 소년들의 충격적인 범죄는 며칠 지나지 않아 되풀이됐다. 그것도 더 대담하고 잔인하게.

반성은커녕...더 대담하고 잔인해진 소년들

경찰에 붙잡힌 A군 일당 중 일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이들은 당일 저녁 풀려났다. 경찰서를 나와 휴대폰을 보던 A군은 ‘조건만남으로 남성을 유인해 금품을 갈취한 10대 일당이 검거됐다’는 뉴스를 봤다. 기사에 나온 소년이 자신임을 알아차린 A군은 반성은커녕 추가 범행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날 저녁 8시쯤 범행에 가담했던 친구와 여자 후배 등 5명을 자신의 집 근처 카페로 불러 모았다.

A군은 이 자리에서 “우리가 한 게 뉴스에 나왔다. 100만 원 정도 벌었다. 같이 하자. 돈 벌면 친구들하고 나눠 갖자”고 제안했다. 함께 범행을 모의한 일행 중 일부는 자신의 친구나 후배를 추가로 불렀다. A군은 여자 후배의 사촌오빠가 되기로 하는 등 역할 분담까지 하며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

사흘 뒤 새벽 1시 20분쯤. 천안시 서북구 한 모텔에 모여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A군 일행에게 30대 남성이 걸려들었다. A군 등은 모텔로 들이닥쳐 “미성년자 동생한테 무슨 짓이냐”며 욕실에서 씻고 있던 남성을 알몸 상태로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도망치려던 남성은 사정없이 날아드는 10대들의 주먹과 발길질에 모든 것을 포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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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남성에게 협박과 고문이 이어졌다. 소년들은 발로 밟고 가슴을 걷어찼다. “어떻게 해결할 거냐. 3,000만 원을 만들라”며 남성의 가슴을 담뱃불로 지지고, 침을 뱉었다. 휴대폰 잠금해제 요구를 거절하자 객실에 있던 커피포트로 끓인 뜨거운 물을 남성의 어깨와 발에 부었다. 수건으로 입과 코를 감싼 뒤 생수병에 담긴 물을 부어 숨을 못 쉬게 하기도 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고문 장면을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소년들은 끝내 남성의 휴대폰 잠금장치를 풀어 계좌에 있던 287만 원을 이체시키고, 카드를 이용해 현금서비스로 120만 원을 인출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소년들은 그날 오전 7시 30분쯤 인근의 또 다른 모텔로 옮겨 점점 과감한 범행을 이어갔다. 소년들은 피해 남성의 카드로 400만 원을 대출받아 나눠 가진 것도 모자라, 한도 제한으로 현금 인출이 막히자 남성에게 직접 은행 창구에 가서 돈을 찾아오라고 협박했다. 그렇게 은행을 찾은 남성은 창구 직원에게 협박당하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해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경찰의 추적을 따돌린 A군 등은 불과 일주일 뒤에 또래 여학생들을 추가로 가담시켜, 아산의 한 모텔에서 20대 남성을 유인해 동일한 수법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200여만 원을 빼앗긴 남성은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소년들에게 300만 원을 더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한 뒤에야 풀려났다. 하지만 약속한 300만 원을 주지 않자, A군 등은 남성이 일하는 곳까지 찾아가 협박을 일삼았다. 피해 남성의 고통은 주변 신고로 소년들이 경찰에 붙잡히면서 끝날 수 있었다.

A군과 함께 조건만남으로 남성을 유인해 금품을 빼앗다가 붙잡힌 청소년은 모두 9명으로, 이들은 4명의 남성을 유인해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이달 9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A군에게 장기 7년에 단기 5년을 선고했다. 법정에 함께 섰던 B군은 장기 6년에 단기 4년이, C군은 장기 5년 6월에 단기 3년 6월이 각각 선고됐다. 나머지 6명 중 5명은 범행 가담 경위와 가담 정도, 나이 등을 고려해 소년부로 송치됐고, 1명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법정에서 A군 등의 공소사실을 듣던 방청객들은 잔혹한 범행에 충격을 받은 듯 탄식을 쏟아냈다. 법정에 있던 기자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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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절도에 사기까지...적용 혐의만 16개에 달해

경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A군 등의 범죄는 이뿐만이 아니다. 조건만남을 이용한 특수강도는 물론이고 특수절도, 사기, 원동기장치자전거불법 사용 등 적용된 혐의만 16개에 이른다.

이들은 지난해 1월 5일 아산시의 아파트 인근 마트에서 식료품을 훔쳤다. 2021년 11월 2일에는 피자판매업소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다니다가 버렸다. 지난해 2월에는 촉법소년인 후배들을 시켜 편의점을 털도록 지시한 데 이어, 3월에는 온라인에 명품을 팔겠다는 글을 올린 뒤 대금을 받아 가로채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 소년들의 범죄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라며 "경찰을 떠나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깝고 씁쓸하다"고 말했다.

최두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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