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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광풍, 종말론 닮았다···'나만 구원받으리라'는 군중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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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트코인으로 40억 원을 벌고 퇴사한 애가 있대." 2021년, 타인의 투자 성공 소식에 직장인 A씨(가상)는 급기야 전 재산 5,000만 원으로 비트코인을 대량 매수했다. 이번 대박의 주인공은 내가 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동병상련 투자자들이 외치는 '가즈아' 구호도 묘한 위로가 됐다.
#2. 1844년 미국. 설교자 윌리엄 밀러를 따르던 교인들은 봄에 농작물을 심지 않았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다. 어차피 세상이 망할 것이기 때문. 밀러는 그해 10월 22일 예수가 재림하고, 성경에 따라 선택받은 이들만이 구원받을 것이라 설파했다. 교회에 모여 기도하며 종말을 기다렸으나, 세계는 지속됐고 역사는 이날을 '대실망의 날'로 기록한다.
가상화폐 버블과 종말 운동. 동기도, 시대도, 장소도 판이하게 다른 두 사건. 딱히 교차점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되풀이된 '투자 광풍'과 '종교적 광기'가, 공통적으로 '집단적 망상'을 땔감 삼아 활활 타올랐다고 주장하는 책이 출간됐다.
책 '군중의 망상'은 집단 사고에 빠진 이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으로 행동했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한다. 미국에서 금융이론가와 역사가로 활동하는 윌리엄 번스타인이 썼다. 화학·의학박사 학위를 가진 그는 신경과 전문의 지식과 각종 심리학 연구를 토대로 투자 광풍과 극단적 종교 행위의 배경에 '인간 본능'이 있다고 논증한다.
저자의 광범위한 관심사만큼이나, 내용은 방대하다. 820쪽의 벽돌책. 중세부터 현대까지 발생한 온갖 종교 논쟁이 튀어나오고 익숙하지 않은 성경 구절이 인용되며, 금본위제가 도입되기도 전인 1600년대 유럽 경제부터 오늘날 금융 경제를 총망라하는 내용 전개라니. 읽기 전부터 길을 잃을까 겁이 날지도 모른다.
걱정 마시라. 저자는 경제와 종교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들며 챕터별로 열다섯 가지 '집단 광기' 사례를 제시하는데, 그 패턴이 놀랄 만치 서로 닮았다 ①개인은 더 나은 삶을 열망한다(나은 삶을 누리는 곳이 현생이냐 영생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②개인은 사실과 수치보다 '서사'에 크게 반응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는 비판적 사고를 감퇴시킨다 ③우월한 대상을 모방하려 하고 남들보다 높은 지위를 얻으려는 인간 본능이 발동한다 ④본능이 추동한 광기는 돈이나 종교의 영향력을 더욱 강화한다.
먼저 종말론 운동을 들여다보자. 신학 해석마다 차이는 있지만, 교인들이 매료되는 서사는 이렇다. 세상의 대격변을 초래하는 핵전쟁 등이 발발하고, 환란의 상황이 끝나면 예수가 재림한다. 예수를 믿는 '선택받은' 이는 천국으로 인도된다. 1844년 '대실망의 날', 1993년 다윗교의 '웨이코 포위전' 등 역사적 사건이 같은 서사를 따랐다. 오늘날 미국에서 정치· 경제· 문화 영역에 걸쳐 두루 힘을 얻고 있는 '세대주의 기독교'도 현재가 종말 세대라는 종말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기독교와 같은 뿌리를 공유하는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도 종말론이 득세해왔는데 가장 현대적 현상이 이슬람국가(IS)다.
투자 버블도 메커니즘이 비슷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기적적 수단으로 '대박' 기회를 잡아 경제적 곤경에서 벗어나려는 열망 속엔 자신을 '선각자' 나 '선택받은 이'로 믿는 구원의 서사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18세기 영국의 '남해회사 버블', 19세기 영국의 '철도 버블', 20세기 '닷컴 버블' 등 역사적 사건에서 투자 열풍은 당대 최고의 신기술에 의해 추동됐는데, 이를 통해 구원받으리라 믿은 이들이 너도나도 재산을 쏟아부었다. 다만 결과론이지만 버블이 사회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효과를 가져온 건 어느 정도 사실. 저자는 "비극적이게도 자신의 부를 희생하여 무의식중에 더 큰 공익에 봉사했다"고 표현한다.
'군중의 망상'에 빠지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다. 그저 '합리화'하는 존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개인이 군중을 이뤄 상호작용을 할수록 우중의 습성이 발현되고 지나치면 광기로 이어진다.
이 같은 '집단 광기'가 아니라 '집단 지성'을 이루긴 위해선 개인이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고유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집단 광기'냐 '집단 지성'이냐는 개인의 분별력과 다양성에 달렸다는 얘기다. "어느 집단이 개인의 다양한 관점을 더 많이 수렴할수록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커진다." 오늘날 뭇 '빠' 집단이 새길 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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