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만 가면 가슴이 ‘두근두근’… ‘가정 혈압 측정' 필요한 이유?

입력
2023.01.15 19: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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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진료실에서 혈압을 재면 '백의 고혈압'과 '가면 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어 하루 2회 가정에서 매일 혈압을 측정하는 '가정 혈압 측정'이 권장된다. 게티이미지뱅크

병원 진료실에서 혈압을 재면 '백의 고혈압'과 '가면 고혈압'이 발생할 수 있어 하루 2회 가정에서 매일 혈압을 측정하는 '가정 혈압 측정'이 권장된다. 게티이미지뱅크

A(52)씨는 5년째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있다. ‘가정에서 혈압을 정기적으로 측정하는 게 중요하다’는 담당 의사가 말했지만 귓등으로 들었다. 매일 집에서 혈압 재는 게 귀찮은 데다 어차피 한 달마다 가는 병원에서 혈압을 측정하는 게 정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이 혈압계를 선물해 집에서 아침저녁으로 혈압을 쟀는데 혈압 차가 너무 나서 깜짝 놀라 의사에게 말한 뒤 다른 고혈압 약으로 바꿔 먹고 있다. A씨는 “병원에서만 혈압을 쟀으면 몰랐을 일”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혈압 환자가 벌써 1,374만 명(유병률 27.7%ㆍ2021년 기준)이다. ‘고혈압 전 단계 (130~139/80㎜Hg 이상)’까지 합치면 국민의 절반가량이 해당된다. 게다가 20대 고혈압 환자가 2017년 대비 2021년 44.4% 증가했다.

고혈압은 평소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심ㆍ뇌혈관 질환에 노출돼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침묵의 살인자’로 불리는 이유다. 이에 따라 대한고혈압학회는 가정에서 간편하고 정확하게 혈압을 인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가정 혈압’ 측정을 강조하고 있다.

◇고혈압 환자 65%, ‘가정 혈압’ 측정 안 해

대한고혈압학회의 ‘2022년 고혈압 진료 지침’에 따르면, 고혈압은 140/90㎜Hg 이상(가정 혈압의 경우 135/85㎜Hg 이상)일 때를 말한다. 정상 혈압은 120/80㎜Hg 미만이다. 120~129/80㎜Hg 미만일 때는 ‘주의 혈압’, 130~139㎜Hg(최고 혈압) 혹은 80~90㎜Hg(최저 혈압)은 ‘고혈압 전 단계’로 분류된다. 혈압이 평소 160/100㎜Hg 이상으로 매우 높다면 전문의에게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

황인창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평소 가정에서 자신의 혈압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혈압이 높거나 ‘백의(白衣) 고혈압(병원에서 측정하면 혈압이 높아질 때)’ ‘가면(假面) 고혈압(집에서 측정하면 고혈압인데 병원에서는 정상 혈압일 때)’ 등으로 진료실에서 정확한 혈압 측정이 어렵다면 ‘가정 혈압’ 측정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가정 혈압 측정과 관련해 대한고혈압학회 소속 가정혈압포럼은 지난해 말 30대 이상 고혈압 환자 1,000명을 대상으로 인식 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조사 대상 환자의 65.5%가 가정 혈압을 알고 있어, 5년 전(60.6%)보다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렇지만 고혈압 실제 측정은 눈에 띄게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 2017년 조사 결과 가정에서 직접 혈압을 측정하는 환자는 31.4%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35.5%로 4%포인트 늘었다. 아직 응답자의 64.5%가 가정 혈압을 재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사 대상 환자들은 가정 혈압을 측정하지 않는 이유로 △가정용 혈압계가 없어서(47.8%) △병원 진료 때 측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겨(19.5%) △번거롭고 귀찮아서(13.8%) 등을 꼽았다.

김혜미 중앙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가정 혈압은 고혈압의 약물 치료 반응 정도를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되며, 야간 고혈압 혹은 아침 고혈압, 병원에만 오면 혈압이 달라지는 현상(백의 고혈압, 가면 고혈압) 여부를 확인하는 데도 필요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혈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면 심ㆍ뇌혈관 질환 발생이나 장기가 손상될 위험이 높아질 수 있어 조기 발견을 위해 가정 혈압 측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미향 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단순 고혈압인데 대형병원에 다니면서 병원에서만 혈압을 잰다면 연 2~4회 정도 혈압을 측정하지 않아 충분하지 않다”며 “하루 2회 정도 혈압을 재기 위해서는 가정 혈압 측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현재 웨어러블 기기의 혈압 측정은 정확성이 다소 떨어진다”며 “아직은 기존 방식대로 상완(上腕ㆍ위팔)에 커프를 감아 혈압을 측정하는 방식이 권유된다”고 했다.

◇‘가정 혈압’ 측정, 아침 식전과 취침 전 하루 2회 적절

가정 혈압 측정은 하루 2회 정도(아침 식전, 취침하기 전) 하는 것이 권장된다. 가정 혈압을 측정하기 시작하면 7일 연속으로 재는 것이 좋다.

혈압 측정을 하려면 조용한 곳에서 의자에 등을 기대앉아 5분간 안정을 취한 뒤 혈압계의 커프를 심장 높이에 맞추고 다리를 꼬지 않은 상태에서 재야 한다. 혈압 측정 30분 이내에는 흡연ㆍ카페인 섭취ㆍ운동을 피해야 하고, 측정 도중 움직이거나 말을 삼가야 한다.

잘못된 자세로 혈압을 재면 2~10㎜Hg, 담배를 피우면 5~20㎜Hg, 커프와 심장 높이가 다르면 40㎜Hg까지 높게 측정될 수 있다.

통증과 스트레스도 혈압을 올리는 원인이 된다. 실제보다 혈압이 높게 측정돼 이에 따라 고혈압 약을 복용하다간 저혈압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가정 혈압 측정법을 제대로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김철호 대한고혈압학회 가정혈압포럼 회장(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 교수)은 “가정 혈압 측정은 높은 재현성과 함께 동일 시간대 혈압 모니터링이 가능하며, 진료실 혈압만으로 쉽게 진단할 수 없는 백의 고혈압과 가면 고혈압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므로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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