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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의 역사적 스캔들인 십자군 전쟁의 한 축이었고 이제는 장르 문학의 소재로 널리 쓰이는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s)’이 1128년 1월 13일 교황 호노리우 2세(Honorius II)에 의해 ‘신의 군대’로 인가받아 이듬해 프랑스 상파뉴에서 열린 트루아 공의회에서 공인됐다.
기사단은 1118년 프랑스 귀족 위그 드 파앵 단장을 포함, 9명의 귀족 출신 수도사들로 결성됐다. 1099년 1차 십자군 원정으로 예루살렘이 탈환되자 수많은 유럽인들이 성지순례에 나섰다. 하지만 강도와 무슬림군 잔당 때문에 오가는 길이 썩 불안했다. 순례자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게 기사단이 스스로 정한 소명이었다. 단원들은 가난과 정결, 순종을 맹세한 수도사이자 엄격한 군율을 따르는 고도로 훈련된 전사였다. 그들의 활약이 알려지며 교황 인노첸시오 2세는 기사단에게 세금을 면제해주는 칙서를 내렸다. 기사단 규모는 점점 커져갔고, 왕실과 귀족들도 앞다퉈 기부했다. 기사단은 방대한 토지와 자본과 특권을 지닌 거대 집단으로 변질됐고, 12세기 말부터는 왕가와 유력 영주들을 대상으로 한 금융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동시에 십자군 전쟁의 전황은 점점 교회의 기대와 멀어졌고, 1187년 예루살렘도 도로 빼앗겼다. 본부를 프랑스 파리로 옮긴 성전기사단의 명성도 추락했지만 이미 그들은 교황도 국가도 쉽사리 견제할 수 없는 사적 권력집단이 된 뒤였다. 1307년 10월 13일의 금요일, 프랑스 국왕 필립 4세와 교황 클레멘트 5세가 군대와 용병을 동원해 기사단 본부를 급습, 당시 단장 자크 드 몰레를 비롯한 지도부 전원을 체포했다. 그리고 고문을 통해 그들이 십자가에 침을 뱉고, 단원들끼리 음란 행위를 즐긴 ‘사실’을 자백받았다. 기사 대부분은 수년에 걸쳐 화형됐고, 1312년 기사단도 공식 해체됐다.
성전기사단이 여전히 비밀리에 건재하며, 성배와 십자가 파편, 모세 십계명 석판 등을 보관한 언약의 궤 등 성물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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