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로 뒤덮인 '바흐무트'...우크라·러시아가 물러서지 않는 이유

입력
2023.01.10 21:00
17면

반년 전투로 초토화...격전으로 시신 곳곳에
러시아 '패배 만회', 우크라 '승기 확보'...의미 커
소금 광산, 군사 전술 등 치밀한 계산도 개입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외곽에서 러시아의 공격 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바흐무트=AP 뉴시스대표 이미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외곽에서 러시아의 공격 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바흐무트=AP 뉴시스대표 이미지


우크라이나 동부 요새 도시 '바흐무트'를 차지하기 위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치열한 전투가 6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속된 포격으로 건물 대부분은 파괴됐고, 길거리에는 시체 더미가 쌓여 있을 뿐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바흐무트 일대를 두고 “여러 전선 가운데 가장 피비린내 나는 곳”이라고 했을 정도다.

양측 모두 피해가 크지만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병력과 무기를 지속해 투입하며 물량전에 나서는 양상이다. ①동부지역 전세가 달린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②양측 군대의 사기 진작을 위한 '무리한 전투'라거나 ③러시아 용병그룹 '와그너'의 잇속 챙기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가장 피비린내 짙은 전선’, 그곳은 지금

9일 가디언, CNN 등은 바흐무트의 근처 도시 솔레다르에서 격전이 벌어져 마을 전체가 러시아군 시신으로 뒤덮였다고 보도했다. 솔레다르는 바흐무트 동북부에 위치한 탄광촌으로, 이곳을 빼앗길 경우 바흐무트로 접근하는 길이 뚫릴 수 있다. 바흐무트를 차지하기 위한 양측의 전투가 인근 지역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이날 러시아가 다연장로켓·박격포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자 우크라이나도 드론, 보병 전투 차량 등으로 맞서 큰 규모의 사상자가 나왔다. 가디언은 “솔레다르 지역 항공사진을 통해 폭탄 때문에 급변한 지형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격전이 진행 중인 바흐무트 전선. 그래픽=강준구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격전이 진행 중인 바흐무트 전선. 그래픽=강준구 기자

바흐무트의 상황 역시 처참하다. 지난 6일 우크라이나 드론이 촬영한 영상에는 오랜 전투로 초토화된 도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놓고 "이 도시에는 △갈색(진흙길) △회색(무너진 건물) △흰색(연기) 등 세 가지 색만 존재한다"고 묘사했다. 지난달 바흐무트를 떠난 한 우크라이나 군인은 “종말의 모습”이라고 회상했다.

전략적 중요성? 자존심 회복 위한 전투?

두 나라가 바흐무트에서 여섯 달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이유는 이 지역이 갖는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바흐무트는 러시아가 현재 점령하고 있는 루한스크와 도네츠크로 연결되는 길목이다. 우크라이나는 바흐무트를 발판으로 빼앗긴 영토를 찾아야 하고, 러시아는 이 공격을 막아야 한다.

패배를 거듭한 러시아 군대의 사기 진작을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리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는 지난해 9월 하르키우를 우크라이나에 내준 데 이어 11월엔 헤르손까지 빼앗겼다.

바흐무트가 도네츠크 주요 도시로 향하는 길목에 있긴 하지만, 그 전략적 가치에 비해 큰 병력을 동원할 이유는 ‘자존심 회복’과 ‘사기진작’에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유라시아학자 에스레프 야린킬리클리는 “푸틴에게는 몇 달 만의 첫 승리가 절박할 것”이라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21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 국회의사당에서 연설 후 바흐무트 전선에서 복무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서명이 담긴 우크라이나 국기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선물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지난해 12월 21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 국회의사당에서 연설 후 바흐무트 전선에서 복무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서명이 담긴 우크라이나 국기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선물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우크라이나 역시 최근의 승리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바흐무트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쟁 초기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러시아군과 정면 대결을 피했으나, 최근 몇 번의 승리 이후 전략을 바꿨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해 말 미국 의회를 방문해 선물한 우크라이나 국기에는 바흐무트 군인들의 서명이 빼곡했다. 이 지역을 러시아에 내주지 않겠다는 우크라이나의 의지가 담겨 있던 셈이다.

와그너의 잇속 챙기기 시도...패배한 쪽은 치명타

러시아 용병그룹의 잇속 챙기기 시도가 장기간 전투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솔레다르 전투를 주도하는 병력은 푸틴의 측근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이끄는 ‘와그너 용병그룹’이다. 일각에서는 프리고진이 솔레다르에 있는 소금, 석고 광산을 빼앗으려고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프리고진이 바흐무트 부근의 소금·석고 광산을 개발하고, 자신의 병력과 러시아 지방 관리를 연결하기 위해 전쟁을 이용하고 있다”고 봤다.

두 나라 모두 물러서지 않는 이상, 한 곳의 타격은 필연적이다. 그레고리 시몬스 스웨덴 웁살라대 부교수는 "바흐무트는 두 군대 중 하나를 닳게 할 고기 분쇄기”라며 “승리한 군대가 전장에서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와그너 용병그룹의 창시자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와그너 용병그룹의 창시자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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