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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표 삶에 숨통을 열어 준 건…

입력
2023.01.19 04:30
수정
2023.02.24 16:4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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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송 '효재와 근숙' (비유 2022년 11월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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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살인. 단 네 글자에 얽힌 사연은 외부인이 헤아리기에 너무 깊다. 용어는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지만.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말 그대로 '독박' 간병으로 숨 쉴 틈 하나 없는 쳇바퀴 같은 삶에 끝이 안 보이는 순간, 비극은 발생한다. 반복되는 하루에 갇힌 고립감과 외로움이 사람을 더 지치게 하는지도 모른다.

문학웹진 '비유' 2022년 11월호에 실린 임이송 작가의 '효재와 근숙'은 도돌이표 같은 삶으로 생기를 잃은 쉰다섯 살의 두 여성을 차분하게 그린다. 간병인과 암 환자. 완전히 반대 위치에 놓인 듯하지만 서사가 진행될수록 데칼코마니처럼 꼭 닮은 현실이 드러난다. 미세한 교류와 고요한 소통으로도 서로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작가는 두 인물을 통해 전한다.

전직 간호사인 '효재'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홀로 간호한다. "아무런 특장점이 없고 결혼하지 않은" 이유로 약사인 두 언니 대신 간병을 맡았다. 이들은 간호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주며, 남의 손에 엄마를 맡길 수 없다며 은근히 막내를 압박한다. 똥 기저귀를 가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효재'는 그저 버티고 있다.

그런 '효재'가 숨 쉬는 시간은, 엄마가 잠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단 두 시간이다. "내가 엄마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에게 낮잠 훈련을 시켜 만든 짬이다. 아파트 내 상가 카페에서 빵을 사 먹는 게 전부지만.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카페 옆 수선집에 잠시 들른다. 두 언니가 격주로 엄마를 잠깐 돌보는 일요일, 의무감으로 쇼핑한 원피스 혹은 스카프를 수선하러 간다.

또 다른 주인공 '근숙'은 그 수선집 주인이다. 쌍둥이 아들이 동반 입대한 후 혼자 사는 '근숙'은 얼마 전 암 진단을 받았다. 4차 항암 치료까지 마친 그는 환자이자 자신의 간병인이다. 이혼 후 홀가분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삶은 여전히 버겁다.

임이송 작가.

임이송 작가.

둘은 5년 가까이 손님과 수선집 주인으로 만나 서로 이름도 묻지 않는 관계다. 그런데도 서로 부러워한다. '효재'는 안에서 바깥은 내다보지 않고 "치열하게 일하는" '근숙'이, 방 두 칸짜리 전세를 사는 '근숙'은 아파트에 살면서 매번 새 원피스 수선을 맡기는 '효재'가 부럽다.

그 관계가 변한 건 두 여자가 상대에게 자신의 현실을 발견하면서다. '효재'는 "바쁘게 입어야 하는 옷"은 수선을 못한다며 입원 계획을 알리는 수선집 주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근숙'은 '효재'가 맡기는 원피스가 엄마 간병으로 "매일이 도돌이표처럼 돌아가는 게 미칠 것 같아" 샀지만 입을 일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감정에 파동을 느낀다. 이후 둘은 무언의 교감을 수선으로 나눈다. 크림색 치마에 황금색 실로 천사를 정성껏 수놓은 이도, 그 옷을 받아 든 이도 "옷에 혈색이 도는 것"만 같다고 느낀다. 서로를, 스스로를 응원하는 마음이 그렇게 아주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다.

삶을 '독박'으로 책임진다는 건 고통이다. '독박'은 단절을 뜻하기 때문일 테다. 단절은 사람을 흐르지 않는 시간에 파묻어 버린다. 매일이 같은 일상에서 생기를 찾긴 어렵다. 그럴 때 아주 가깝지 않아도 "마음에 바람 통로를 만들어" 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숨통이 약간은 열리지 않을까. '효재와 근숙'처럼 말이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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