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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돌이표 삶에 숨통을 열어 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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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간병살인. 단 네 글자에 얽힌 사연은 외부인이 헤아리기에 너무 깊다. 용어는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지만. 사건의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말 그대로 '독박' 간병으로 숨 쉴 틈 하나 없는 쳇바퀴 같은 삶에 끝이 안 보이는 순간, 비극은 발생한다. 반복되는 하루에 갇힌 고립감과 외로움이 사람을 더 지치게 하는지도 모른다.
문학웹진 '비유' 2022년 11월호에 실린 임이송 작가의 '효재와 근숙'은 도돌이표 같은 삶으로 생기를 잃은 쉰다섯 살의 두 여성을 차분하게 그린다. 간병인과 암 환자. 완전히 반대 위치에 놓인 듯하지만 서사가 진행될수록 데칼코마니처럼 꼭 닮은 현실이 드러난다. 미세한 교류와 고요한 소통으로도 서로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작가는 두 인물을 통해 전한다.
전직 간호사인 '효재'는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홀로 간호한다. "아무런 특장점이 없고 결혼하지 않은" 이유로 약사인 두 언니 대신 간병을 맡았다. 이들은 간호사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주며, 남의 손에 엄마를 맡길 수 없다며 은근히 막내를 압박한다. 똥 기저귀를 가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효재'는 그저 버티고 있다.
그런 '효재'가 숨 쉬는 시간은, 엄마가 잠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단 두 시간이다. "내가 엄마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엄마에게 낮잠 훈련을 시켜 만든 짬이다. 아파트 내 상가 카페에서 빵을 사 먹는 게 전부지만.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카페 옆 수선집에 잠시 들른다. 두 언니가 격주로 엄마를 잠깐 돌보는 일요일, 의무감으로 쇼핑한 원피스 혹은 스카프를 수선하러 간다.
또 다른 주인공 '근숙'은 그 수선집 주인이다. 쌍둥이 아들이 동반 입대한 후 혼자 사는 '근숙'은 얼마 전 암 진단을 받았다. 4차 항암 치료까지 마친 그는 환자이자 자신의 간병인이다. 이혼 후 홀가분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삶은 여전히 버겁다.
둘은 5년 가까이 손님과 수선집 주인으로 만나 서로 이름도 묻지 않는 관계다. 그런데도 서로 부러워한다. '효재'는 안에서 바깥은 내다보지 않고 "치열하게 일하는" '근숙'이, 방 두 칸짜리 전세를 사는 '근숙'은 아파트에 살면서 매번 새 원피스 수선을 맡기는 '효재'가 부럽다.
그 관계가 변한 건 두 여자가 상대에게 자신의 현실을 발견하면서다. '효재'는 "바쁘게 입어야 하는 옷"은 수선을 못한다며 입원 계획을 알리는 수선집 주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근숙'은 '효재'가 맡기는 원피스가 엄마 간병으로 "매일이 도돌이표처럼 돌아가는 게 미칠 것 같아" 샀지만 입을 일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감정에 파동을 느낀다. 이후 둘은 무언의 교감을 수선으로 나눈다. 크림색 치마에 황금색 실로 천사를 정성껏 수놓은 이도, 그 옷을 받아 든 이도 "옷에 혈색이 도는 것"만 같다고 느낀다. 서로를, 스스로를 응원하는 마음이 그렇게 아주 조금씩 싹트기 시작한다.
삶을 '독박'으로 책임진다는 건 고통이다. '독박'은 단절을 뜻하기 때문일 테다. 단절은 사람을 흐르지 않는 시간에 파묻어 버린다. 매일이 같은 일상에서 생기를 찾긴 어렵다. 그럴 때 아주 가깝지 않아도 "마음에 바람 통로를 만들어" 줄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숨통이 약간은 열리지 않을까. '효재와 근숙'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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