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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는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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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총잡이들의 아이콘인 콜트 리볼버 권총은 증기선 선원 출신 발명가 새뮤얼 콜트(Samuel Colt, 1814~1862)에 의해 1836년 미국 뉴저지주 작은 공장에서 탄생했다. 증기선 바퀴 모양에서 착안한 자동 회전 챔버로 5~6발의 총알을 연달아 발사할 수 있게 만든 그 권총은 하지만 처음부터 미국인에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우선 너무 비쌌고, 소총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졌고, 크기와 모양새 때문에 덜 남성적인 무기로 치부됐다. 그래서 콜트 권총은 소수 귀족들의 결투용 무기나 부유층 여성들의 호신용으로 제한적으로 소비됐고, 서부 개척민 등 남성들이 근접전이나 호신용으로 선호한 건 칼, 특히 ‘보위 나이프(Bowie Knife)‘라 불리는 사냥용 칼이었다.
콜트는 투자까지 받아 이듬해 말까지 1,000여 정의 권총을 생산해 연방정부를 비롯한 수요처를 돌며 시연을 벌였지만 계약을 따내지 못했고, 신규 투자도 얻지 못해 43년 말 공장 문을 닫고 유동자산을 경매에 넘길 지경에 처했다.
그 와중에 미국-멕시코 전쟁(1846~47)이 터졌다. 미국의 텍사스 합병에 반발한 멕시코 기병대가 리오그란데강을 건너면서 시작된 그 전쟁에서 연방정부는 1847년 1월 4일, 콜트사와 권총 1,000정 납품 계약을 맺고 재고 전량을 텍사스 민병대에 보급했다. 민병대원들의 긍정적인 사용 ‘후기’와 잇따른 관급 계약 덕에 콜트 권총의 이미지는 급격히 개선됐고, 자금난을 던 콜트 역시 성능을 개량하며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해 단가를 빠르게 낮췄다. 1850년대 본격화한 서부 골드러시로 권총은 ‘서부 사나이’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고, 1861년 시작된 남북전쟁으로 또 한 번의 도약기를 맞이했다. 당시 콜트사의 홍보 카피는 “링컨은 모든 사람을 해방시켰지만, 새뮤얼 콜트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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