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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그토록 사랑했던 그 휴머니스트

입력
2022.12.31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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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홍정선 지난 8월 타계
팔봉비평문학상 제정·운영 주역
비평적 균형감, 문단 진영 논리에 묻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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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 2015년 제26회 팔봉비평문학상 최종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수상작을 논의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홍정선 정과리 김인환 김주연 오생근 심사위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2015년 제26회 팔봉비평문학상 최종심에서 심사위원들이 수상작을 논의하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홍정선 정과리 김인환 김주연 오생근 심사위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선생은 아무런 가식이 없었다. 말 그대로 소탈하고 털털했다. 일각에서 ‘문단권력’으로 비판받은 문학과지성사 대표를 4년간 역임했지만, 그에게서 어떤 권위나 허위의식을 느낄 수 없었다. 짧게나마 선생과 인연을 맺으며 느꼈던 것은 감히 말하건대 문학과 글쓰기에 대한 짙은 경외와 애정, 진솔한 인간미였다.

10여 년 전 풋내기 문학 담당 기자였을 때 알게 됐던 문학평론가 홍정선 선생은 그렇게 문학을 사랑했던 휴머니스트였다. 올해 문화부로 발령 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지만, 선생은 이미 쓰러진 후였다. 홍정선 선생은 지난 8월 22일 생을 마감했다.

올해 문학계에서 유난히 많은 어른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2월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5월 김지하 시인, 9월 소설 ‘만다라’의 김성동 작가, 12월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까지. 거목들의 부고 하나하나가 문학이 절정이었던 한 시대를 마감하는 늦은 오후의 종소리처럼 쓸쓸했지만, 선생의 부음은 가슴을 찌르는 가시처럼 아팠다. 마치 비평의 영원한 죽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홍 선생은 한국일보가 1990년부터 2021년까지 주관했던 팔봉비평문학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주역이었다. 근대 문학 비평을 개척한 팔봉 김기진(1903~1985) 선생을 기리는 비평문학상 제정을 유족들에게 권고했고, 이후 이 상의 운영위원으로서 30년 가까이 궂은일을 도맡았다. 어떤 수익도 없는 일이었지만, 상의 정신을 유지하는 게 그의 보람이었다.

상 제정 당시에도 팔봉의 친일 행적은 알려져 있었지만, 근대 비평 개척자의 업적을 역사에서 삭제할 수 없고, 일제강점기의 모순적 양상을 선악 이분법으로 재단할 수 없다는 게 선생의 뜻이었다. 그에겐 문학과 문학 밑에 깔린 인간애가 국가와 이념의 틀보다 더 넓고 더 깊은 바다였다. 1회 수상자인 김현을 시작으로 김윤식 김치수 김우창 김병익 등 기라성 같은 평론가들이 수상하며 뿌리 깊은 정신의 계보를 만들었다. 2017년 수상자였던 김형중 평론가는 역대 수상자들을 거론하며 “제게는 이루어야 할 정신의 모범이었다”면서 “이 상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학의 위상이 날로 위축되는 상황에서 되레 문단의 앙상한 잣대는 점점 더 위력을 떨쳤다. 친일문학상을 폐지하라는 압력과 시위의 강도는 해가 갈수록 거세졌다. 이런 소란에 유족마저 지쳤고, 이 상을 지탱했던 홍 선생이 쓰러지면서 운영 동력이 상실됐다. 결국 올해 유족들이 출연한 기금이 환원되면서 팔봉비평문학상은 폐지됐다. 문학의 사회 참여를 내세우던 흐름엔 문학의 독립성을, 상업성이 문학을 덮칠 때 비판 의식을 강조했던 선생의 비평적 균형감각 역시 우리 사회의 적대적 진영 논리에 묻히고 만 셈이었다.

소위 ‘친일문학상’이 없어졌기에 문학의 정신이 회복된 것일까. 지자체들이 지역 홍보 차원에서 문학상을 남발해 수백 개의 상이 만들어졌지만 나눠먹기 수상으로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더군다나 그 많은 문학상 중 비평가에게 주는 상은 거의 없다. 회색의 대학 강단이나 알량한 추천사가 아니라면 비평의 자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친일과 반일의 깃발이 나부끼는 사이 비평은 극소수만 찾는 폐허가 된 셈이다. 비평이 없는 곳에서 문학 작품인들 제 빛을 볼 수 있을까. 저 수많은 문학상들이 기리는 정신이 대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최근 몇 년간 문단 미투 사건, 표절 시비, 문학상 난립 등으로 문학판에는 존경할 어른도, 따르고 싶은 본보기도 없다는 말이 무성하다. 결국 그렇게 시대가 저물었다.



송용창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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