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태원 희생자 명단 공개 반인권적"이라더니… 국회로 넘어간 사상자 개인정보

입력
2022.12.29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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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소방서, 이름만 '엉성히' 가려
전자문서 '정보값'은 그대로 남아

서울 용산소방서가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용산구 이태원동 119-7 구조출동 사상자 이송현황'. 해당 파일을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하면 사상자 실명이 그대로 노출된다. 국회 이태원 국조특위 제공

서울 용산소방서가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제출한 '용산구 이태원동 119-7 구조출동 사상자 이송현황'. 해당 파일을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하면 사상자 실명이 그대로 노출된다. 국회 이태원 국조특위 제공

정부기관이 ‘이태원 참사’ 사상자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 등 상세한 개인정보를 제대로 가리지 않은 채 국회에 자료를 낸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제출 자료는 국회의원과 보좌진은 물론 언론이 취재차 열람하는 경우도 많다. 유출 위험성이 큰 개인정보를 허술하게 관리한 것이다. 앞서 정부는 한 인터넷 언론이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 “반(反)인권적” 표현까지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던 터라 ‘자가당착’이란 지적도 나온다.

28일 국회 등에 따르면, 서울 용산소방서는 이달 21일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에 ‘용산구 이태원동 119-7 구조출동 사상자 이송현황’을 전자문서(PDF) 형태로 제출했다. 자료엔 사상자 163명의 이름과 성별, 나이, 이송병원, 중증도 등의 정보가 담겼다.

용산소방서는 이름 부분에 짙은 사각형 모양의 그림을 덧씌워 국회에 자료를 냈다. 그러나 이는 레이어(층)를 한 겹 더한 것에 불과해 가려진 부분 아래 정보값은 그대로 남아 있다. 쉽게 말해 화면에서만 잘 보이지 않을 뿐, 복사와 붙여 넣기 기능을 활용하면 간단히 복구할 수 있다. 실제 사상자 이름은 바로 확인됐다. 자료를 열람한 몇몇 보좌진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했다.

의료정보 등 더 민감한 개인정보가 적시된 일부 구급활동일지도 같은 방식으로 비실명처리됐지만, 복사 후 붙여 넣기를 하니 이름과 성별, 나이, 생년월일은 물론 휴대폰 번호, 주소지, 환자 상태와 진술 등을 기술한 구급대원 평가 소견까지 볼 수 있었다.

통상 비실명처리를 할 땐 전자문서를 출력하고 먹칠 등 물리적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가린 뒤 다시 스캔하는 과정을 거친다. 아니면 그림파일 등으로 한 차례 더 변환해 정보값을 아예 사라지게 해야 노출되지 않는다. 가령 보건복지부가 국조특위에 제출한 사고 당일 ‘중증도 분류표’는 그림파일 형태로 비실명처리돼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없다.

서울 용산경찰서가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제출한 구급활동일지 일부. 파란색 사각형으로 가려진 부분 아래 정보값이 그대로 살아있다. 국회 이태원 참사 국조특위 제공

서울 용산경찰서가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 제출한 구급활동일지 일부. 파란색 사각형으로 가려진 부분 아래 정보값이 그대로 살아있다. 국회 이태원 참사 국조특위 제공

사상자 개인정보가 사실상 무방비로 유출됐는데도, 정부기관들은 서로 책임 미루기에 급급했다. 최상위 소방기관인 소방청은 “용산소방서가 소속된 서울시 산하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입장을 밝힐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소방공무원은 2020년 4월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소방 업무는 지방자치단체 사무로 남아있으니 소방청이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는 논리다. 서울소방재난본부도 작성 주체인 용산소방서에 책임을 떠넘겼다. 용산소방서 관계자는 “담당자 착오로 발생한 일”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앞서 인터넷 매체 민들레가 유족 동의 없이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자 정부 고위 인사들은 ‘2차 가해’에 해당한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반인권적 행동으로 유족에 대한 2차 좌표 찍기”라고 힐난했다.

김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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