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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줄 채워 감금·폭행까지"… 도심 한복판서 일어난 '방석집' 인권유린

입력
2022.12.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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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자매포주 종업원 학대 사건
동물사료 주고·뜨거운 물 붓기도
1년 넘게 이어진 상상초월 학대
업주 "신고하면 가족에게 알린다"
법원 "있을 수 없는 끔찍한 가학"
"경찰·지자체 참여 인권조사 절실"

편집자주

끝난 것 같지만 끝나지 않은 사건이 있습니다.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건의 이면과 뒷얘기를 '사건 플러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강원 원주시의 한 유흥업소에서 여성 종업원들을 감금하고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강원 원주시의 한 유흥업소에서 여성 종업원들을 감금하고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은 누구나 함부로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선 안 될 권리를 갖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기본적 권리를 '인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에서 믿기지 않는 인권유린 현장이 적발됐다. 이른바 '방석집'이라 불리는 유흥업소 업주 자매는 여성 종업원에게 목줄을 채워 감금한 것도 모자라 폭행에 동물사료를 먹이기까지 했다. 강원 원주시에서 일어난 포주 자매의 종업원 학대사건이다. 법원이 1심 판결 이후 언론에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자매의 범죄는 충격적이었다. 그곳엔 우리가 상식이라 여기는 최소한의 인권조차 없었다.

"목줄 채우고 개 사료 먹이고"

포주 자매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린 지난 7월 14일 춘천지법 원주지원. 검사가 공소요지를 읽어 나가자 믿을 수 없다는 방청객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법정에서 경청하던 취재진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 자그마한 2층 건물에서 일어난 폭행과 학대는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였다.

검찰은 옛 원주역 인근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A(52)씨와 B(48)씨 자매가 종업원 C씨 등을 2020년 3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목줄을 채워 감금하고, 대소변을 먹게 하는 행위를 강요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한 종업원은 귓바퀴(이개)에 지속적인 자극과 충격에 따른 출혈로 이개혈종(일명 만두귀)이 발병했다고 했다.

검찰이 제시한 두 자매의 혐의는 폭력행위처벌법상 공동감금, 공동폭행, 상습폭행, 강요, 강제추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촬영물 등 이용 협박), 유사강간 등 16가지에 달했다.

"설마 이런 일이" 수사관도 충격

자매에게 폭행과 학대를 당한 30~40대 피해자는 모두 5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업소가 문을 닫자 피해 여성 3명이 지난해 8월 경찰에 고소장을 내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팬데믹이 없었으면 모진 학대를 얼마나 더 견뎌야 했을지 모를 일이다. 충격적인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여론이 들끓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 수사관도 "차라리 소설인 게 낫겠다"고 말할 정도로 끔찍한 학대와 폭행이 확인됐다. 지난 1년간의 수사기록은 3,000여 페이지에 달한다.

피해자들이 언론 및 수사기관, 재판을 통해 진술한 내용을 종합하면, 업주 자매는 감금한 것 외에도 개 사료를 식사로 주거나 커피포트로 끓인 물을 몸에 붓고 담뱃불로 몸을 지지는 등 갖가지 수법으로 피해 여성들을 학대했다.

돌조각을 신체 중요 부위에 넣도록 강요하는가 하면, 대·소변을 핥아먹게 하고 상대방과 유사 성행위를 강요하고 이를 촬영해 협박한 혐의 등이 수사 결과 추가됐다. 한 종업원은 "일명 유리방으로 불리는 '홀박스'에 내려 보낸 뒤 졸면 때리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지속적인 학대와 폭행으로 한 종업원은 체중이 30㎏이나 줄었다. 멍과 지울 수 없는 흉터로 뒤덮인 몸은 처참했던 그들의 삶을 짐작케 했다.

법원, 포주 자매에게 징역 22~30년 선고

대한민국 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대한민국 법원. 한국일보 자료사진

악행을 저지른 자매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지난 10월 20일 동생 B씨에게 징역 30년, 언니 A씨에겐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을 "현대사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한 가학범죄"라고 규정했다. 인간의 존엄마저 짓밟힌 피해자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며 자매에게 중형을 내린 이유를 밝혔다.

동생 B씨에게 징역 40년, 언니 A씨에게는 징역 35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형량이 가볍다"며 항소했다. 자매도 1심 판결 나흘 뒤 법원에 항소장을 냈다. 이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은 서울고법 춘천재판부에서 항소심이 열리게 됐다.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은폐"

원주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지난 7월 5일 원주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성 종업원들을 학대한 업주의 처벌을 요구했다. 원주여성민우회 제공

원주여성민우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지난 7월 5일 원주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여성 종업원들을 학대한 업주의 처벌을 요구했다. 원주여성민우회 제공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같은 가혹행위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이다. 피해 여성들은 감금당한 상태에서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포주가 두려워 적극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 어려웠다.

해당 지역에서 수차례 캠페인에 나섰던 시민단체 관계자는 "유흥업소 종사자들에 대한 면담을 하려고 해도 업주가 문을 열지 않는 등 협조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작은 조직에선 수평적인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업주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은폐가 가능한 구조"라고 강조했다.

지자체 점검 역시 형식적이었다. 업소에 주류와 음식의 유통기한을 준수하고 불법 성매매를 하면 안 된다는 '형식적 설명'에 그쳤기 때문이다. 향후 제2, 제3의 학대사건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원강수(왼쪽 가운데) 원주시장은 지난 7월 원주 유흥주점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 사건과 관련, 여성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집결지인 희매촌의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원강수(왼쪽 가운데) 원주시장은 지난 7월 원주 유흥주점에서 발생한 인권 유린 사건과 관련, 여성단체와 간담회를 열고 집결지인 희매촌의 폐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원주시는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성매매집결지인 '희매촌' 폐쇄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아울러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 일부 개정 조례' 효력을 2년 연장했다. 성매매 여성 지원상담기관인 춘천 길잡이의 집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정부와 지자체, 경찰이 유흥업소 종사자의 인권실태를 정밀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주= 박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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