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의존은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외침"

입력
2022.12.16 04:30
14면
구독

"힘들게 하는 사람은 힘들어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약물 의존증 환자에 대한 새로운 고찰
신간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 저자 인터뷰

신간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의 저자 마쓰모토 도시히코 정신과 전문의. 그는 25년간 약물 의존증 환자를 만났다. 그는 한국일보와 서면으로 만나 "빈곤과 차별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약물 문제로 치환하려는 말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스즈쇼보 제공

신간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의 저자 마쓰모토 도시히코 정신과 전문의. 그는 25년간 약물 의존증 환자를 만났다. 그는 한국일보와 서면으로 만나 "빈곤과 차별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약물 문제로 치환하려는 말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스즈쇼보 제공

1만6,153명. 지난해 국내 마약류 사범 숫자다. 3년 연속 1만6,000명을 넘어섰다. 누구나 쉽게 약물에 손댈 수 있게 된 현실을 입증한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층의 증가다. 지난해 기준 마약류 사범 중 56.8%는 20~30대였다. 19세 이하도 450명(2.8%)이나 됐다.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엉망이 된 인생을 사는 사람들'. 재활의 기회를 주기보단 낙인을 찍어 내치기 바쁘다.

하지만 신간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은 약물 의존증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약물 남용자가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들이 약물을 선택하는 건 살아남기 위한 절박한 외침이라는 시선이다. 저자는 25년간 약물 의존증 환자들과 만나 온 일본 정신과전문의 마쓰모토 도시히코다.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약물을 비롯해 범죄로 여겨지는 것에 굳이 손을 대는 젊은이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거나, ‘마음을 마비시키며 천천히 죽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사람은 배신하지만 약은 배신하지 않아"였다. 그 속에서 그는 ‘난 안심하고 타인에게 의존할 수 없어’라는 진심을 읽었다. 그래서 마쓰모토 박사는 환자들을, 마음속에 덩그러니 뚫린 구멍을 타인 대신 약이라는 물건으로 메우려 하는 사람들로 정의한다.

마쓰모토 박사가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사람은 배신하지만 약은 배신하지 않아"였다. 게티이미지 뱅크

마쓰모토 박사가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사람은 배신하지만 약은 배신하지 않아"였다. 게티이미지 뱅크

그 역시 의존증 전문병원에 '타의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속으로 반쯤 울면서 진찰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환자가 지식이 없어서 약물을 끊지 못한다고 여겨 약물의 위험성을 설파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마쓰모토 박사가 깨달음을 얻은 건 약물 중독자 회복을 위한 자조모임에서였다. 병원에서까지 약물을 사용해 출입 금지를 당했던 환자가 다른 환자들과 교류하며 몇 달간 약물을 끊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의존증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조모임은 안심하고 실패할 수 있는 공동체다. 자조모임에 나가서도 실패할 수 있지만, 그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충실한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안정된 단약 상태까지 평균 7~8회 실패를 거듭한다는 연구도 있다”면서 “재발은 약물 의존증의 회복 프로세스에 처음부터 포함돼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꼬집는 것은 우리의 편견이다. 소년교정시설에서 촉탁의로 일했을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불량 청소년들은 범죄자였지만 가정과 학교에서 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했다. 그때 마쓰모토 박사는 "힘들게 하는 사람은 힘들어하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는 "아이들은 타인을 해치는 게 아니라 자해나 약물 남용 등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근원에는 절망과 고립이 있다"고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마쓰모토 도시히코 지음·김영현 옮김·다다서재 발행·264쪽·1만5,000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고통·마쓰모토 도시히코 지음·김영현 옮김·다다서재 발행·264쪽·1만5,000원

언론의 태도도 중요하다. 예컨대 연예인이 약물에 연루됐을 때, 미디어는 대중의 처벌 감정만 부추긴다. 문제는 이를 지켜보는 환자들이다. 마쓰모토 박사는 "(환자들이) '아무리 힘내서 약을 끊어도 내가 돌아갈 곳은 없어'라고 절망해 치료 의욕을 잃어버린다"면서 "약물 이미지가 약물 의존증 환자의 약물 갈망을 자극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걸핏하면 빈곤과 차별 같은 사회적 문제를 약물 문제로 치환해 마치 모든 악의 근원이 약물이라는 듯한 말은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신과 의사로서 “항상 ‘계속 지고 있다’는 느낌에 빠져 있다”고 고백한 그의 꿈은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애초에 내가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무력함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생애 내내 정신과 의사’라고 할 만한 방식을 인생에서도 관철하고 싶습니다.”

이근아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