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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처럼 살기 싫다는 말의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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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는데 어느새 거울에 엄마가 보인다.' 가난과 희생의 삶을 답습하기 싫었던 딸들의 대사다. 살아보니, 돌아보니, 엄마도 그 삶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었겠다는 걸 깨닫는 순간 가슴은 더 콱 막힌다. 타인의 삶을 섣불리 재단한 나의 오만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모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할머니와 손녀가, 언니와 여동생이 그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 여성 서사기도 하다. 월간 '문학사상' 2022년 11월호에 실린 김유담 작가의 단편 '가난한 나의 사촌'은 어린 시절부터 돌봄의 굴레에 속해 있는 사촌 언니를 통해 이를 풀어냈다. 작가는 대물림되는 가난과 가부장제, 여성의 돌봄 노동의 현실을 잔잔히 응시한다. 판단은 잠시 미뤄두고 담아낸 그 고단함과 신산함에 먹먹해진다.
'희정'은 서울에서 전업 번역가로 일한다. 고등학교 은사의 부고 소식에 고향 밀양에 내려왔다가 사촌 언니 '김영혜'의 집에 며칠 묵게 되면서 소설은 진행된다. 그는 언니를 "스무 평짜리 낡은 연립주택 일 층에서 초등학생 딸아이를 기르며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묘사한다. 형부는 운영하던 식당에서 일명 진상 손님과 시비가 붙어 특수상해 혐의로 옥살이 중이다. 마트에서 일하며 아이를 키우고 집 근처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어른들을 돌보는 일이 모두 '영혜'의 몫이다.
'희정'은 담담하게 몫을 다해가는 언니를 보며 고단함을 느낀다. 가난의 원인을 조상 탓이라고 푸념하면서도, 열 명이 넘는 사촌 중에 '영혜'가 가장 가난하다고 콕 집어 말한다. 특히 큰집에 얹혀살던 어린 시절에 봤던 '어린' 언니와 겹쳐 보이는 조카 '현아'를 보면 답답함은 배가 된다. 영어 기초학력이 "처참한 수준"인 반면, 자기 키보다 높은 싱크대 앞에 목욕탕 의자를 놓고 올라가 설거지를 야무지게 해내는 조카를 보면 가난의 대물림이 시리게 느껴진다.
영혜네에서 느끼는 '희정'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가령,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할머니를 흉봤지만 할머니가 끓여준 시래깃국을 닮은 언니의 국을 맛있게 먹는다. 과거 큰집과 비슷한 풍경을 보며 "정감 어린 마음과 진저리 쳐지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과정에서 물음표를 던진다. "고향에 남아 고향 남자를 만나 살면서 늙어가는 양가 부모를 돌보는 언니의 삶을 언니의 온전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집안일만 바쁘게 하던 '영혜'는 대학을 못 갔고, 직장 생활하며 엄마에게 맡긴 월급은 본인도 모르게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이 됐다. 정작 자신은 결혼할 때 한 푼 없이 시작한 게 '영혜'다. '희정'이 은연중에 언니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한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이다.
가끔 타인의 행동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한다. "도대체 왜?" 아무리 살펴봐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 감정적 친밀도가 높은 가족의 경우엔 의문을 넘어 화가 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21쪽짜리 단편 소설을 읽는 이 시간에는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한 뼘 커진다. 서울로 올라가면서 언니에게 차마 "현아 영어학원 좀 알아보라"고 말하지 않고 돌아선 '희정'을 이해하게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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