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대는 성별 아닌 권력 문제… 보복 감정 아닌 절차적 정의가 우선"

입력
2022.12.08 17:4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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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교만의 요새'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상습적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 '그녀는 말했다'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상습적 성폭력 문제를 다룬 영화 '그녀는 말했다'의 한 장면.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2017년 시작된 성폭력 고발 '미투(Me Too)' 운동은 양성평등에 큰 진전을 가져왔지만 근본적 변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유명인들의 외침으로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환경이 만들어졌지만, 법적 보호 장치의 개선보다 주로 창피를 주고 낙인을 찍는 처벌로 이어졌다는 게 한계다. 보복적 창피 주기로는 온전한 상호 존중의 세계에 이를 수 없다.

미국의 법철학자인 마사 너스바움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성희롱·성학대를 성별이 아닌 권력의 문제로 다룬 것도 이 때문이다. 너스바움 교수는 신간 ‘교만의 요새’에서 성범죄는 여성의 온전한 자율성을 부정하는 남성 지배 권력의 '교만'이라는 악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여성을 평등한 사람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남성의 '대상화'와 '교만'의 역사를 되짚으며 남녀 모두에게 공정한 미래지향적 해법을 모색한다.


마사 너스바움. 위키미디어 커먼스

마사 너스바움. 위키미디어 커먼스

책은 페미니스트들의 성취를 인정하되 보복주의적 승리 대신 법적 책임을 통한 화해의 비전을 제시한다. 저자는 우선 미국의 법적 제도가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구체적 사례와 이에 맞선 페미니스트들의 사유를 돌아본다. 그러면서 명확한 제도적 규칙이 교화적 힘을 발휘하는 기업·대학 등과 달리 선명한 규칙이 없는 법조계와 예술·스포츠계에서 교만과 성희롱의 상관관계가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 살핀다. 이를 통해 권력의 부당한 사용, 공소시효 문제, 증거 사용 방식, 신고 장려 등 성적 자율성과 주체성을 인정하기 위한 구체적 법적 절차들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감정적 부분이 공적 지침이 될 수 없음을 거듭 밝히면서 "이 책은 정의에 관한 책이되, 화해를 비롯해 공유된 미래를 추구하는 정의에 관한 책"이라고 강조한다.


교만의 요새·마사 너스바움 지음·박선아 옮김·민음사 발행·440쪽·2만4,000원

교만의 요새·마사 너스바움 지음·박선아 옮김·민음사 발행·440쪽·2만4,000원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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