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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화 늪에 빠진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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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거리에서는 화물차주들이 2주일이 넘도록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기를 주장하며 정부와 맞서고 있지만, 국회에서는 또 다른 제도의 일몰 여부를 놓고 정치권이 대립하고 있다. 올해 연말이면 효력을 상실하는 건강보험법 부칙을 둘러싼 갈등인데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안전운임제 존폐여부보다 크다. 해마다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국고로 지원하는 규칙으로 2007년 처음 만들어졌고 3차례 연장됐다. 의료 공공성과 국가 책임을 강조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번에는 일몰 규정을 아예 폐지하고 항구적으로 국고로 건강보험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여당인 국민의힘과 예산부처는 일몰 규정을 없애는 데 부정적이다. 특히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는 이 부칙을 단 1년만 더 연장한 뒤 이후 이를 없애고 현재 보건복지부가 관리하는 건강보험재정을 국회와 예산부처가 통제하는 기금으로 전환하고 싶어 한다.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인지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놓고 여야 간 난상토론이 벌어졌지만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건보료 국고지원, 건보재정 기금화를 둘러싼 이런 신경전은 건강보험제도가 맞닥뜨린 복잡한 숙제들을 보여준다. 건강보험은 사회보험 중 유일하게 사각지대가 없다. 어떤 사회보험보다도 보편적이라는 게 장점이지만 낮은 보장성 때문에 국민들의 체감 의료비는 여전히 높다. 역대 정부들이 꾸준히 보장성 강화에 힘을 쏟았던 이유다. 물론 재정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건강보험 재정의 누적수지는 20조 원 흑자이지만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뒷짐만 지고 있을 계제는 아니다. 누가 집권하더라도 건강보험제도가 보장성 강화와 재정 안정이라는 두 축의 수레바퀴로 굴러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2000년대 이후 처음으로 보장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은 정부다. 그래서인지 전임 정부의 적극적인 보장성 강화정책(‘문재인 케어’)을 선심성·낭비성 정책으로 규정하고 ‘지출 조이기’에만 진력하는 것으로 비친다. 연내 근골격계로 확대하려던 자기공명영상(MRI)·초음파 검사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은 물 건너갔고,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문턱도 높아질 수 있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을 경우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된다면 의학적 타당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건강보험을 적용했던 약제들의 건강보험 줄탈락도 예상된다.
제도 정비가 명목이지만 정치적 의도가 짙게 느껴진다는 점이 진짜 문제다. 감사원은 지난 8월 지난 5년간 MRI 등에서 1,606억 원의 건보적용 위반사례가 의심된다는 보고서를 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런 식으로 ‘문재인 케어’에 부정적 낙인을 찍은 뒤 이를 지출 통제의 구실로 삼고 있다. 지출을 절감하겠다면서 외국인 피부양자 조건 강화를 제시한 점도 순수하지 않다. 외국인 피부양자는 입국 즉시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데 최소 체류조건을 6개월로 설정한다고 해도 한 해 겨우 200억 원 정도 절감할 수 있다. 외국인 혐오정서에 기댄 포퓰리즘 정치라는 표현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건강보험은 지난 수십 년간 가입자인 국민, 의료계, 정부의 합의로 운영돼온 제도다. 이해관계는 다를지라도 ‘몸이 아파도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사람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권이 정치적 목적으로 제도를 왜곡시키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지난 대선 때 나온 탈모약 건강보험 공약처럼 필수적이지 않은 의료행위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겠다는 포퓰리즘도 문제지만 ‘재정 절감’이라는 레토릭으로 건강보험 취지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의 해악도 크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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