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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토끼 동시에 잡으려다가

입력
2022.11.18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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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강화, 건전 재정, 감세 동시 달성은 꿈
정부 내년 예산안은 모두 실현 약속했지만
부자감세만 남고 복지 재정 모두 악화될 판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지난 16일 시위대가 '공공임대 주택 예산 5조7000억 원 삭감안에 동조하는 국민의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지난 16일 시위대가 '공공임대 주택 예산 5조7000억 원 삭감안에 동조하는 국민의힘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상품 기획자들에게 널리 알려진 공식이 있다. 이른바 ‘프로젝트 삼각관계’이다. 프로젝트 실현의 3요소인 ‘비용’ ‘시간’ ‘성능’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우니, 최선의 결과물을 얻으려면 상황에 따라 요소들을 조정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공식이다. 비용을 절약하고 시간도 단축하려면 성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성능을 높이는 동시에 시간도 줄이려면 비용이 올라간다. 비용을 절약하면서 성능도 높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셋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프로젝트는 꿈에서나 가능하다.

나라 살림에도 이런 삼각관계가 존재한다. ‘세금’ ‘복지’ ‘재정건전성’이 그 3요소다. 세금은 낮추고 복지를 늘리면 재정은 악화한다. 재정건전성을 지키면서 세금도 줄이려면 복지를 줄여야 한다. 또 복지를 늘리고 재정건전성도 지키려면 세금을 늘려야 한다. 그런데 내년 예산안은 셋을 모두 만족시킬 꿈같은 결과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정부는 예산안의 목표를 ‘따뜻한 나라, 역동적 경제, 건전한 재정’으로 요약했다. 구체적으로 복지를 위한 지출을 늘리고, 5년간 감세하면서, 재정건전성도 해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연 실현 가능한지 따져보자.

우선 복지다.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은 639조 원이다. 그런데 분야별 예산을 모두 더하면 647조4,000억 원이다. 그 차이에 대해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출 분야 간 중복되는 예산을 각 분야 모두 총액으로 계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부의 고질적 부풀리기 홍보다. 결국 부문별로 세세히 따져봐야 실제 증감을 파악할 수 있다. 복지 분야에서 전년보다 증가율이 두 자리로 늘어난 예산은 공적연금, 기초생활보장, 노인 기초연금 등 늘어날 수밖에 없는 고정비용이다. 반면 노인 일자리 같은 고용과 임대주택 지원 예산은 각각 9%와 6.6% 삭감됐다. 경기침체가 예상되는 내년 더 많은 지출이 필요한 부분을 삭감하는 것을 두고 ‘따뜻한 나라’를 위한 예산이라 부르는 건 어색하다.

정부는 내년 지출을 올해(추가경정예산 포함)보다 5,000억 원 줄였다며 ‘긴축 예산’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과거 10조 원 규모에 그치던 지출 재구조화를 올해는 24조 원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중 지난해까지 진행됐던 코로나19 관련 한시적 예산이 내년 자동 폐지되면서 줄어든 지출이 9조 원을 넘는 점을 고려하면 고작 5,000억 원 줄인 예산을 긴축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민망하다. 여기에 내년 정부가 예상한 총수입 625조9,000억 원도 과장됐다. 국회예산정책처 전망치는 이보다 3조4,000억 원이 적다. 내년 국가채무비율도 정부 주장대로 올해보다 감소하는 게 아니라 증가할 수밖에 없다. 재정건전성은 악화한다.

세금은 줄어든다. 올해 상반기까지 기업 실적 등 경제가 전년보다 좋았기 때문에 내년 세수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5년간 감세가 늘어난다. 내년 법인세 감면액만 12조7,0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16.7%인 4조2,443억 원은 대기업에 돌아간다. 2년 전과 비교하면 대기업 감면액이 2배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부동산 세제 완화 등이 더해져 부자 감세라는 비판이 나온다. 향후 5년간 감세 규모를 정부는 13조 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기준 향후 5년간 줄어드는 금액은 60조 원에 달하고, 자연증가분까지 고려하면 250조 원이나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자 감세를 계속하려면 재정건전성이나 복지 둘 중 하나는 희생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며, 재정건전성과 복지 두 토끼를 모두 놓치고 있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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