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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 아닌 동네 친구의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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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게 해주는 게 여러 가지 있지만, 친구는 그중 꽤 높은 순위에 속할 거라 생각한다. 논어는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가 멀리서 나를 찾아주는 친구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같이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 돕고 도덕적 귀감이 될 수 있는 친구를 가지는 것이 좋은 삶의 조건이라고 했다.
동료들과 최근 실시한 조사에서 한국인의 친구 관계에 대해 상세히 물어보았다. 우선 대부분 사람들이 편하게 사적인 대화를 나누고 서로 도움도 청할 수 있는 가까운 친구가 최소한 한 명 이상 있다고 했는데, 가장 흔한 답은 세 명에서 다섯 명 사이였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학교 동창생이어서 42%가 친구 대부분 혹은 전부 다가 동창생이라고 했고, 반 이상이라고 한 사람까지 합하면 63%에 달했다. 한국인들이 오랜 기간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미국이나 유럽 연구에서도 학교 동창생은 친구 관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 비율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높고 30대가 되면 직장동료, 40대 이후에는 이웃, 동호회, 사회단체 등에서 만난 친구의 비중이 더 높아진다. 한국에서도 동창생 비율은 20대에 가장 높지만 60대 이상에서도 동창생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젊은 시절 학교에서 맺은 친구 관계를 평생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학창시절에 만나 평생 가깝게 지내는 친구가 있는 것은 물론 큰 복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동창생 중심 친구관계의 어두운 구석도 보여준다. 동창생 친구는 대부분 동년배, 동성이고, 또 사회경제적 배경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친구 중 동창생 비중이 높은 사람들은 가족, 친구 등 내부집단에 대한 신뢰와 유대감이 강한 반면, 이웃이나 낯선 사람에 대해서는 불신과 무관심을 보인다. 가령 동창생 친구 비중이 높을수록 곤경에 처한 가족이나 친구를 돕겠다는 비율은 높지만, 어려움에 처한 이웃이나 낯선 사람을 보았을 때 돕겠다는 비율은 낮다. 친구 관계가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동창생으로 제한될수록 사회적 신뢰와 연대감의 반경이 좁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반면 동네에서 만난 친구가 있는 사람들은 낯선 이에 대한 신뢰도 상대적으로 높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더라도 도울 의향이 더 강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도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사는 동네에 대한 애착도 강하고, 기부나 자원봉사 활동에도 더 적극적이다. 물론 동네 친구를 가지는 것이 신뢰와 연대의 반경을 넓히는 것인지, 아니면 거꾸로 폭넓은 신뢰와 연대의 성향을 가진 이들이 이웃에게 쉽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가족에 대해서는 거의 절대적 신뢰를 보이는 반면 이웃이나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는 낮은 한국 현실에서, 동네 친구를 가진 사람들의 이런 태도와 행동은 주목할 만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조사에 의하면 이웃 친구를 가진 한국인은 많지 않아서 세 명 중 두 명은 이웃 친구가 전혀 없다고 했다. 당장 이웃의 문을 두드려 친구가 되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침에 마주치는 이웃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고 가볍게 안부를 묻는 데서 시작하면 어떨까? 동창 모임은 한 번쯤 건너뛰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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