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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착취에 무심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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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158명의 시민이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한 이태원 참사는 놀러 가서도 결코 안전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실상을 드러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는 일을 하다가도 쉽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태원 참사의 슬픔으로 잠시 잊히는 것 같았던 제빵공장 20대 여성 노동자의 죽음. 그는 꼭 한 달 전인 지난달 15일 새벽 6시 15분 철야근무의 막바지 작업으로 샌드위치 재료 혼합기를 작동하다가 회전날개에 끼여 숨졌다. 사람들은 혼합기에 안전덮개를 설치하지 않은 회사의 안전불감증을 질타하고 망자의 장례식장에 자사의 빵을 보낸 회사의 몰염치에 분노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래된 문제여서일까. 장시간 노동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는 조용히 묻혔다. 주야간 맞교대 근무자였던 망자가 정신적ㆍ육체적 피로가 최고조에 달하는 새벽 시간에 사고를 당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이런 형식의 주야간 교대근무가 납이나 자외선처럼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산업보건상 위해성 우려는 어쩌면 부차적이다.
자발적인 행위로 포장돼있으나 노동자의 불가항력적 자기착취를 유인한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실제로 숨진 노동자의 임금은 주간근무 기준으로 200만 원이 안 됐다. 야간근무수당이 더해져 270만 원 정도였다. 노동시간 규제 정책이 거론될 때마다 “장시간 노동을 선호하는 노동자도 있다”고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안전운임제 고수를 명분으로 24일 다시 파업을 예고해 비난을 받고 있는 화물연대의 행태도 이런 관점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격인 안전운임제가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일각의 지적이 나오지만,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해 운전자들의 자발적 장시간 노동을 억제하는 효과는 분명하다. 한상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가 화물차들의 운행기록장치(DTG)를 분석한 자료를 살펴보니 운전시간 상위 5%인 화물차 운전자들은 주당 60시간(하루 8시간)을 운전했다. 운전시간에 포함되지 않는 상ㆍ하차 시간을 포함하면 이들의 하루 노동시간은 12시간 30분에 달한다. 전체 화물차의 5%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장시간 노동으로 졸음과 싸워가며 운행하는 화물차량이 전국적으로 1만5,000대에 육박할 것으로 한 교수는 추산한다. 스스로를 갉아먹는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화물차 운전자들이 안전운임제 고수에 매달리는 건 이해가 간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장시간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주장했을 때 걱정이 됐지만, 첫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노동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밝힌 인사를 앉히자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막 정착기에 들어간 주52시간 상한제를 흔들며 뒷문을 열어주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올해 말 폐지될 예정이었던 30인 미만 사업장의 ‘주 8시간 추가 연장 근로’를 2년 연장하겠다고 밝혔고, 해외파견 건설현장의 특별연장근로 한도도 연 90시간에서 180시간으로 늘려줬다. 노사를 설득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보존의 최적해(解)를 찾는 노력 대신 "노사가 바란다"며 장시간 노동을 허용해 임금을 보존하겠다는 손쉬운 해법 찾기에 골몰한다는 인상이다.
부디 윤석열 정부는 전임 보수정부들조차 장시간 노동문제 개선에 노력했던 점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추가연장근무, 휴일특근 같은 장시간 노동으로 수당을 챙기려는 강력한 완성차 업계 노조와 이들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켜 인원을 늘리지 않고 공장을 돌리려는 사용자의 담합은 철옹성 같았다. 강력한 근로감독으로 이들의 심야노동을 철폐한 정부가 바로 기업친화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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