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부의장 출신 이석현, 희생자 명단 공개 감싸다 누리꾼과 댓글 설전

이석현 전 민주당 의원 "역사적 참사" 명단 공개 옹호
"유족 동의 없는 공개 부적절" 민주당 입장과도 배치
이정미 정의당 대표 "명단 당장 내리고 정쟁 멈춰야"
유족 요청으로 비공개 처리된 이름 23명으로 늘어

1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추모 문구가 써 붙어 있다. 경찰은 사고 현장 통제선을 제거했다. 연합뉴스

6선 중진의원으로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더불어민주당 이석현 전 의원이 서울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를 옹호하다 누리꾼들과 댓글로 설전을 벌여 논란이다.

이 전 의원은 참사를 사회적으로 기억해야 한다며 명단 공개의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유족 동의 없는 이름 공개는 폭력이라는 누리꾼들의 반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 전 의원은 1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 진보성향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가 참사 희생자 명단을 무단으로 공개한 것을 감싸는 글을 올렸다.

이 전 의원은 "10·29 참사의 희생자 명단이 밝혀졌다고 범죄시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꽃다운 젊은이들이 국가의 잘못으로 숨져간 역사적 참사다. 정부가 명단도 유가족 모임도 돕지 않는 것은 단순사고화해서 역사 속에서 지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보공개? 유가족 의견? 그런 논리라면 세월호나 9·11명단도 지워야 하는가!"라고 적었다.

이에 한 트위터 이용자가 '유가족이 싫다는데 무슨 역사적 참사 운운하나요?'라고 댓글을 달자, 이 전 의원은 즉각 '유가족 전원에게 물어봤나요?'라고 답글을 달았다. 명단 공개에 찬성하는 유족들도 있다는 취지로 보인다.

명단 공개 정당성 강조하다, '유족 전원 찬성했냐' 누리꾼 댓글에는 '침묵'

이석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의 정당성을 강조한 글을 트위터에 올린 데 이어 명단 공개를 비판하는 트위터 이용자들과 댓글로 설전을 벌였다. 트위터 캡처

그러나 이 전 의원의 댓글은 곧바로 반박당했다. 또 다른 이용자는 '그렇다면 묻고 싶다. 유가족 전원이 찬성했나요? 단 한 분이라도 반대한다면, 해선 안 될 일이 있습니다. 그 어떤 애도나 추모도 유가족분들의 아픔과 고통을 넘어설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이 전 의원은 해당 댓글엔 답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용자가 '명단 공개는 정쟁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글에 '정치적 효과가 어느 진영에 도움 되냐보다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만 적었을 뿐이다.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를 옹호한 이 전 의원의 인식은 민주당의 공식 입장과도 배치된다. 앞서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직접 나서 유족 동의를 전제로 희생자 신원 공개를 정부에 촉구했지만, 무단 공개로 인한 역풍이 거세지자 "유족 동의 없는 공개는 부적절하다"(안호영 수석대변인)며 선 긋기에 나섰다.

그러나 민주당 차원의 공식 입장이나 사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당내 혼란이 가중되는 모습이다. 이원욱 의원이 개인 자격으로 SNS에 "유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줬다"며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

이정미 "당장 명단 내려야"... 유족 요청에 익명 처리된 이름 23명으로 늘어

국민의힘 이종배 서울시의원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를 고발하기 위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유족들의 반발도 확산되고 있다. 공개된 155명의 희생자 명단 가운데 유족 측의 요청으로 이름이 익명 처리된 숫자는 전날 13명에서 23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K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민들레 측이 홈페이지에서 명단을 즉각 삭제하고, 사과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특히 유족들이 요청할 경우 익명 처리한다는 민들레 측의 후속조치에 대해 "자식 잃고 지금 슬픔에 빠져 있는 유족들이 내 자식 이름 있는지 확인하고 그다음에 그 유족 중에 한 명이라는 것을 증빙하고 그렇게 하라는 소리냐. 2차 가해, 3차 가해"라고 비판했다.

명단 공개 논란을 정쟁으로 비화시키는 정치권을 향해서도 "유족들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주는 일을 중단하라"고 쓴소리를 했다. 특히 민주당에 대해선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잘못된 것이고 게재를 철회하라는 공식 입장을 밝혀 정쟁을 끊어내는 게 바람직하다"며 보다 명확한 태도를 촉구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