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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생존자 김초롱씨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의사결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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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에서 생존한 김초롱(33)씨는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영화만 같다. 26세부터 8년째 핼러윈데이에 이태원을 찾았던 김씨는 매년 인파에 떠밀려 이동했고, 그날 역시 그런 일로만 알았다. 참사 후 쓰러진 여성을 봤을 때는 '술에 취해 그런가' 싶었다. 주변에서 "CPR할 수 있는 분 있으면 도와주세요"란 목소리를 들었지만, 지나치고 집에 간 그는 다시 찾은 참사 현장에서 '잘못했다. 미안하다'는 쪽지를 남겼다.
9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출연한 그는 "현장에서 본 분들은 다 일류 같은 사람들"이라며 이태원 참사 원인을 ‘정부 안전 시스템 부재’로 돌린 정치권을 질타했다. 김씨는 “잘못 없는 사람들이 잘못된 비난을 피해 숨을 필요는 없다”며 지난 2일부터 이태원 참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상담일지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김씨가 참사 현장 근처인 ‘메인 도로’에 진입한 건 저녁 9시 20분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심각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원래 이 정도로 많았다”는 그는 “(사고가 난) T자 거리에 바로 당도할 때쯤에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고 말했다. 사람들로 붐벼 “발이 땅에 안 닿는 순간”이 왔지만, “조금(있으면) 풀리겠지”라고 생각했다. “원래 풀렸으니까.” 이 과정에서 함께 간 친구를 놓쳤다.
사실 김씨가 있던 거리는 참사가 난 폭 3.2m 골목에 들어서기 직전인 이태원 세계음식거리다. 거기서도 발이 공중에 뜰 만큼 인파에 밀렸다. 그렇게 밀리기를 수십여 분, “옆에 있던 분이 술집 벽으로 밀어줬고”,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지한 술집 사장이 문을 열어 몇 명을 가게 안으로 들여보냈다. 잠시 숨을 돌린 김씨는 가게를 나가 반대 방향을 향해 걸었다. 당시가 10시 30분에서 40분 사이, 참사가 발생했을 무렵이다. “1m 가는 데 10분이 걸렸다”는 그는 옆 가게 문 앞에서 헤어진 친구를 발견했고 “친구면 들어오라”는 식당 사장의 배려로 또 한번 가게로 대피했다. 그곳에서 새벽 1시까지 보내며 경찰들의 통제 소리를 들었던 김씨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았지만 (가게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더 충격이었다”고 회상했다.
‘정부 참사 대응에서 충격적이거나 당황스러웠던 부분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김씨는 “(이번 사고에) 컨트롤타워가 없고 안전시스템이 무너졌다고들 얘기하는데, 우리나라가 그렇게 별로인 나라냐”고 되물었다. 그는 “CCTV가 굉장히 많고 112 신고를 하면 몇 초 만에 답장이 오고 1분 내로 출동을 하는 경찰들이 있고 그게 해결이 되면 해결 그 결과를 문자로 바로바로 알려준다. 시스템이 붕괴됐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며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 위에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참사현장을 대비해야 할 의사결정권자들이 “요즘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어디를 가는지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핼러윈데이, 이태원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올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놀다가 이런 사고가 난 거니까 내 책임 아니다’라는 사고가 깔려 있기 때문에 이태원에서 사고가 났다는데도 느릿느릿 걸어서 갔고, 이상한 사과도 나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장에서 본 분들은 다 일류 같은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참사 후 김씨는 “이해받지 못한다는 마음”과 “사과를 하고 싶은 대상” 사이에서 갈등했다. 참사 당시 ‘CPR할 수 있는 분 있으면 도와주세요’란 말이 끝내 귓가에 남았고, 한국심리학회를 통해 무료 전화상담을 받았다. 그는 “놀러 가서 유흥을 즐기다가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일상을 살다가 참사가 일어난 거란 말을 듣고 위로가 됐다”며 “생각보다 국가가 지켜주는 부분이 많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있으니 언제든지 많은 분들이 많이 이용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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