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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다할 것" 역대 관료들이 반복한 '사퇴 거부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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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관료들의 서울 이태원 참사 관련 발언들이 온라인을 달구고 있다. 참사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사퇴 의사를 묻는 질의에는 한결같이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겠다"(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며 거부 의사를 내비췄기 때문이다.
특히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을 질 것이냐'는 질의에 "마음의 책임"이라고 답한 박희영 용산구청장에게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말장난도 정도껏 하라"는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누리꾼은 "그 마음은 마음으로 용서할 테니 몸은 수사를 받으라"고 꼬집었다.
"어느 학원에서 배워서 다들 똑같은 말만 반복하나"는 누리꾼들의 비판이 나오지만, "맡은 소명을 다하겠다"는 말은 역대 관료들의 단골 '사퇴 거부의 변'이었다. 각종 의혹이 수사로 이어지며 사퇴 압력을 받았을 때는 "결과를 지켜봐달라"며 결백을 강조하기도 했다.
2006년 8월 2일 종합일간지 1면 헤드라인은 김병준 당시 교육부총리의 ‘사퇴 거부의 변’이 장식했다. 노무현 정부 '공교육 혁신'의 적임자로 꼽힌 김 부총리는 인사청문회를 거쳐 무난히 임명됐다. 하지만 취임 3일 만에 제자 논문 표절, 중복게재 논란에 휩싸이며 사퇴압력에 시달렸다.
김 부총리는 "논문 표절과 논문 재탕 주장에 대해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면서도 "BK21 사업의 최종 보고 과정에서 유사 논문을 같이 제출하는 실수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수차례 사과했다. 그러나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 직후 기자단에 한 발언이 발목을 잡았다. 회의 직후 자진 사퇴 가능성을 물어보는 기자단에 그는 "사퇴는 무슨 사퇴"라며 강하게 거부했고 이 말은 다음 날 경향, 조선 등 주요 일간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본보 역시 '김 부총리 해임 막판 진통 자진사퇴 거부'란 제목으로 이 소식을 1면에 실었다.
2007년 5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이른바 '보복폭행' 논란이 벌어졌을 때 이택순 당시 경찰청장의 발언도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그해 4월 보복폭행 당시 경찰의 늑장 대응으로 사건이 제대로 수사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고, 이 과정에서 경찰 수뇌부의 로비 의혹까지 번졌다.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이 청장이 고교 동창인 한화 측 인사와 김 회장 관련 통화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청장은 전국 경찰 지휘부 회의를 열어 "뼈를 깎는 심정으로 조직쇄신을 위해 노력할 것", “하루빨리 국민 신뢰를 회복하고 조직을 안정시킬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특히 "경찰 지휘부를 비롯해 전 직원이 일치단결해 심기일전할 때"라는 역대급 사퇴 거부 의사를 밝혔다.
2014년 8월 윤일병 사건으로 육군 지휘부 대처가 도마에 올랐을 때 권오성 당시 육군참모총장도 사건이 공론화된 초반 사퇴를 거부했다 여당의 질타를 받았다. 당시 권 참모총장은 수뇌부 책임론에 대해 "자성하고 있으며,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 드린다"면서도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윤일병의 죽음과 직접 관련된 자들의 사법적 처벌은 당연하지만 이번 기회에 군 폭력을 발본색원하기 위해선 지휘라인에 있는 사람은 모두 옷을 벗어야 한다. 소대장에서 참모총장에 이르기까지"라며 권 총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 밖에 △이명박 정부 초기 땅 투기 의혹으로 사퇴 압력을 받은 박미석 사회정책수석("뭘 어떻게 하길 원하느냐") △탄핵 추진이 차질을 빚는다는 이유로 임성근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김명수 대법원장("앞으로 잘 해 볼 것") 등의 ‘사퇴 거부의 변’도 종종 회자된다.
선출직들은 통상 "나는 결백함"을 주장하며 사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선거 과정 등에서 제기된 의혹이 수사까지 번지며 사퇴 압력을 받을 때다. 역시 “맡은 책임을 다하겠다”는 말도 따라왔다.
대표적 사례는 2012년 상대 후보 매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곽노현 당시 서울시교육감이다. 곽 교육감은 서울시 교육감 예비후보를 중도 사퇴(2010년)했던 경쟁자에게 당선 뒤에 2억 원을 준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나 "막중한 책임감과 신중함으로 교육감직을 수행해나가겠다"며 사퇴를 거부하다 재판 끝에 2012년 교육감직을 상실했다(징역 1년형). 이후에도 곽 전 교육감은 "돈을 준 것은 매수나 사퇴의 대가가 아니라 선의"라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갔다.
비슷한 시기 유치원 원장 등에게 고가의 옷 선물을 받아 '로비 의혹'에 휩싸였던 임혜경 전 부산교육감 역시, 지역시민단체까지 나서 사퇴를 요구했지만 끝내 거부했다. 임 전 교육감은 공개 사과문에서 "비리를 저지른 교육공무원은 엄벌에 처하겠다고 취임 초기부터 약속을 해놓고 정작 제가 이런 행동을 했으니 어떻게 얼굴을 들고 학생과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겠냐"면서도 사퇴 요구를 "따끔한 질책"으로 일축했다. "더 낮은 자세로 헌신·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며 끝내 사퇴를 거부했다.
각종 사건‧의혹이 발생하면 관료들에게 "사퇴하라"고 호통을 치는 국회의원도 자신의 사퇴 요구에는 각종 해명을 내놓으며 거부하기 일쑤였다.
2006년 3월 최연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여기자 성추행 파문 보도가 나가자 사과는 했지만, 사퇴 요구엔 거절했다. 당시 그는 '사죄합니다'라는 회견문을 직접 낭독하면서도 "법의 판단을 따르겠다"며 "국민의 공복으로 최선을 다해 왔던 저에 대한 최종 판단을 그때까지만이라도 잠시 유보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사퇴 거부'를 표명한 관료들은 대부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는 "사퇴는 무슨 사퇴" 발언 다음 날 돌연 입장을 바꿔 사의를 표명했다. 권오성 전 총장과 박미석 전 수석도 여야 질타가 나온 후 얼마 못 가 물러났다. 유죄 판결을 받은 곽 전 교육감은 직을 자동 상실했다.
버티기로 임기를 채운 인사들도 있다. 최연희 전 의원은 1심의 징역형을 깨고 2심에서 형의 선고를 유예받아 의원직을 유지했다. 임혜경 전 교육감도 검찰 조사를 받았지만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임기를 이어갔다. 이택순 전 청장 역시 임기 2년을 다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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