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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통제의 부메랑

입력
2022.11.04 18: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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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 보고, 인력배치 실패, 사찰 논란
이태원 참사로 드러난 경찰 난맥상
정치적 중립 무너진 후과 아닌지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희근(맨 오른쪽) 경찰청장이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앉아 있는 이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뉴스1

윤희근(맨 오른쪽) 경찰청장이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앉아 있는 이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뉴스1

정권 교체가 이뤄진 게 맞나 싶을 만큼 활기가 없던 윤석열 정부 출범기에 요란하리만치 의욕적으로 진행된 일이 경찰 통제권 강화였다. 대통령 최측근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직접 총대를 멨던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이 대표적이다.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경찰국을 출범시키는 뚝심을 발휘하는 과정에 이 장관은 경찰 중립성 훼손을 우려하는 일선 경찰관들의 집단 항명을 '쿠데타'라고 윽박질러 잠재웠다. 경찰 인사의 관행을 깨뜨려가며 경찰청장을 비롯한 수뇌부도 물갈이했다.

그렇게 경찰국이 출범한 지 석 달, 경찰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태원 참사의 진상이 드러날수록 수사 주체에서 수사 대상으로 전락해가는 경찰을 보면서 절로 드는 의문이다. 핼러윈 인파에 대비한 경비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고, 사고 4시간 전부터 대규모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2신고를 10건도 넘게 뭉갰으며, 수뇌부는 늑장 조치로 사후 대처마저 망쳤다.

이런 난맥상은 정부가 경찰의 고삐를 죈 조치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휘라인의 기막힌 상황 대처부터가 그렇다. 이임재 당시 용산서장은 사고가 발생한 지 50분이 지난 밤 11시 5분에야 현장에 도착해 11시 36분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보고했다. 기동대 투입 권한이 있는 김 청장이 대통령(11시 1분), 행안장관(11시 20분)보다 상황을 늦게 안 것이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보고를 받은 시간은 이튿날 0시 14분. 그마저 김 청장이 아니라 경찰청 상황담당관에게 전화를 받았다. 즉시 보고에 기반한 지휘체계가 무너졌다.

경찰 안팎에선 수뇌부 인선 과정을 화근으로 꼽는다. 정부는 윤 청장 임명에 앞서 경찰청장(치안총감) 후보군인 치안정감 7명 가운데 6명을 새로 임명했다. 기존 치안정감 가운데 경찰청장을 인선하고 나서 남은 이들을 교체하던 관례가 뒤집혔다. 이 장관은 승진자 전원을 개별 면접하고 인사제청권을 행사했다. 이후 윤 청장은 7개월 만에 세 차례 승진하는 '벼락 출세'로 경찰 수장이 됐고 김 청장은 막판까지 윤 청장과 경쟁했다. 거대한 경찰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데 필요한 최상부 내 위계관계가 약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용산서장이 참사 직전까지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집회 통제를 지휘하고 있었던 점도 의미심장하다. 서울경찰청도 6개 기동대를 지원한 이 현장에선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1만3,000명(경찰 추산) 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이태원에선 그 시간 기동대 하나 없이 경찰 137명이 10만 명을 헤아리는 인파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마저 절반 이상은 질서 유지가 아니라 정부 중점 과제인 마약 단속 등에 투입된 사복 경찰이었다. 한정된 경찰 자원이 이토록 불균등하게 배분되는 과정에 '정치적 중력'이 작용하진 않았나 따져볼 문제다.

참사 이틀 뒤 경찰국 정보국이 '정책 참고자료'라며 만든 여론 동향 문건 역시 문제적이다. 문건에 거론된 진보 단체들의 '민간인 사찰' 비판은 차치하더라도, '정부 부담 요인에 관심 필요' '세월호 사고와의 연계 조짐 감지' 등의 서술 내용은 경찰이 스스로를 '정권 보위 기구'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이 장관은 문건이 생산된 당일 "경찰의 정확한 사고 원인이 나오기 전까지 선동성 정치적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문건을 정말로 '참고'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두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경찰이 정부와의 건전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라 하겠다. 경찰청장은 현장 대응이 미흡했다고 부하들을 탓하고 일선은 무능한 건 지휘부라며 들이받고 있는 자중지란 역시 경찰국 신설 강행의 업보인 것만 같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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