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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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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지난달 25일 출근길. 지하철 4호선을 타고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았는데 안내방송이 나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선전전이 시작돼 모든 역에서 열차가 멈춰 있다는 설명이었다. 전장연이 지하철 시위를 시작한 지 다음 달이면 1년이다. 그간 출근길 지하철 지연을 숱하게 겪었는데, 내겐 이날이 최장 기록이었다. 꼬박 1시간 20분 동안 발이 묶였다.
객실은 차분했다. 앉은 승객은 체념한 듯 눈을 감았고, 선 승객은 멨던 가방을 선반에 올렸다. 열차는 한 정거장씩 이동했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계속 서 있으니 다리가 저리고 발이 아파왔다. 생리현상까지 찾아왔다. 망설이다 내린 역엔 하필 화장실이 개찰구 밖에 있었다. 화장실 앞 의자는 이미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놀랍게도 그때까지 화를 내는 승객이 한 명도 안 보였다. 예전엔 시위대에 들리기라도 하는 듯 큰 소리로 성질을 내고 욕설을 내뱉는 승객들이 있었는데 말이다. 시위에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자의 아닌 타의로 상당한 불편을 겪는 상황에서 큰 동요가 없던 건 눈에 띄는 변화였다. 승객 모두가 전장연 시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은 아닐 터다. 일부 승객이 불편을 드러낼수록 전체의 불편은 더 커질 수 있음을 아니까 자제했을 것이다.
엿새 뒤 퇴근길. 똑바로 서 있기 버거울 정도로 지하철 객실이 만원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쏟아져 나가고 들어오는 승객들에 몸이 이리저리 쏠리고 휘청거렸다. 잠시나마 의자에 앉았는데, 앞에 선 사람에게 발이 밟혔다. 밟은 걸 모르는 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그 사람은 미안해하는 눈길조차 없었다.
내릴 역이 가까워져 일어나 몇 걸음 간신히 뗐는데 옆쪽, 뒤쪽에서 미는 힘이 느껴졌다. 휩쓸리듯 출입문을 빠져나간 순간, 난데없는 욕설이 승강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두 사람이 누가 먼저 밀었네, 욕했네 하며 목청을 높였다. 출입문 바로 앞 그 실랑이 때문에 하차 흐름이 끊기자 승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비난하며 지나갔다. 모두가 불편을 겪는 상황은 전장연 시위날 출근길과 마찬가지였는데 시민들 모습은 참 달랐다.
그사이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있었다. 그날도 시민들 모습은 같지 않았다. 한쪽에선 스러져가는 젊은이들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했는데, 한쪽에선 사진 찍고 춤을 췄다. 누군가는 희생자를 몰라도 마음 아파하고 분향소를 찾았지만, 다른 누군가는 희생자를 모르니 모욕하고 조롱했다. 자극적인 영상만 트라우마를 만드는 게 아니다. 타인의 비극에 무감각한 이웃의 모습도 트라우마로 남는다. 언제 자신도 모욕과 혐오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자리 잡는다.
비통한 재난을 겪으며 맞닥뜨린 시민들의 두 얼굴이 혼란스럽다. 일상 곳곳의 불편과 위험 중에도 수시로 두 얼굴을 마주해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사람을 늘 착한 이 나쁜 이 이렇게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없으니 더 어렵다. 참사 소식에 무심코 ‘하필 거길 왜 갔을까’ 하며 안타까워한 이들이 모두 희생자에 책임을 돌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축제를 즐기다 현장의 아비규환이 실제 상황이란 걸 깨닫는 데 시간이 걸렸던 이도 있을 것이다. 시위로 멈춘 지하철 안에서 남몰래 악플을 달던 승객도 있었을지 모른다. '화나요' 하기도 '좋아요' 하기도 조심스럽다.
책 ‘위험사회’로 잘 알려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2014년 방한 때 정부의 조직화한 무책임을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짚으며 시민이 주도하는 변화를 주문했다. 그 숙제를 우린 아직 다하지 못한 것 같다. 그가 살아 있다면 지금 시민들을 위해 어떤 조언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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