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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첫 112 신고자 "신고하면서도 '과연 출동할까 '싶었다"

입력
2022.11.02 10:00
수정
2022.11.02 10:2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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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첫 신고자 가족 인터뷰]
골목길 꽉 막혀 150m 거리 지하철역까지 30분 걸려
첫 신고 1시간 전부터 이태원역 지하 공간 아수라장
"역대급 인파 큰 일 나겠다 생각에 신고… 택시 귀가"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사고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시민들이 국화꽃을 들고 걸어나오고 있다. 뉴시스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사고 추모공간이 마련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시민들이 국화꽃을 들고 걸어나오고 있다. 뉴시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4시간 전, 112신고를 통해 압사 사고 위험을 최초로 경고한 박모(51)씨가 신고 당시 긴박했던 순간과 탈출 과정을 상세히 전했다. 박씨는 한국일보와 만나 “신고를 하면서도 ‘과연 경찰이 현장에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주최 측이 없어 관리할 수 없다거나 소방이나 경찰 인력을 배치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는 정부의 태도와 인식에 정말 화가 난다”고 말했다. 1일 한국일보와 첫 인터뷰를 가진 박씨는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박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자신이 운영하던 이태원 상점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오후 6시쯤 귀갓길에 올랐다. 평소와 달리 상점에서 150m가량 떨어진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까지 이동하는 데 무려 30분이나 걸렸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 위험을 직감하고 현장에 있던 수많은 인파와 상인 중 처음으로 112에 신고했다. 첫 신고 후 사고 직전까지 위험을 알리는 신고는 10건이 더 들어왔지만, 그의 신고는 두 번째로 접수된 신고보다 1시간 35분이나 빨랐다. 박씨에겐 경찰의 부실 대응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박씨와 그의 남편 서모(50)씨가 전하는 29일 오후 6시 전후 이태원 상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경찰은 첫 신고를 ‘일반적인 불편 신고’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대하는 듯한 느낌을 나도 받았다. 그래서 내가 신고는 했지만, 이들이 과연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기 너머 112 상황실이 바쁘게 돌아갔나.

“그렇진 않았다. 이런 심각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데도 다급함이 없었다. 대충 대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 신고에 경찰 인력이 출동했다고 한다. 경찰의 추가 문의를 받거나 경찰을 만났나.

“만나지 못했고 따로 받은 전화도 전혀 없다. 용산구청도 정부도 주최자가 우리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데 경찰들이 무슨 힘이 있었겠나 싶다.”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했나.

“남편과 딸(14)이 핼러윈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며 가게에 잠시 왔다가 오후 6시쯤 같이 귀갓길에 올랐는데, 얼마 못 가서 모두 뿔뿔이 헤어졌다.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고가 난 그 골목을 통과할 수 없었다. 큰 문제가 생기겠다 싶었다. 나는 해밀톤호텔 상가 뒷문으로 들어가 내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와 호텔 정문으로 나왔다.”

-호텔 앞 상황은 어땠나.

“6시 반쯤이었는데, 이미 난장판이었다. 평소 주말엔 사람이 많아도 어깨를 부딪히며 걷는 골목인데 골목 진입 전 새마을회관 쯤부터 인파에 떠밀려 움직일 정도로 사람이 밀집해있었다. 그런데도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정말 끝이 안 보였다. 신고를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그 좁은 골목길을 내려오기도 힘든 상황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리로 올라가겠다고 나오고 있었다. 바로 112에 전화했다.”

-통제 인원은 보지 못했나

"당연히 나라에서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경찰 두 명 정도 노점상을 지도하는 것만 봤다. 골목길로 내려온 딸아이가 길 끝에서 찍은 영상을 보면, 좁은 길에 사람들이 그렇게 붐비는 와중에 짐꾸러미를 맨 오토바이까지 들어오고 있라. 현장 통제가 전혀 안 됐다."

-(남편 서씨에게)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고 했다.

“아내를 먼저 잃었지만, 이 지역을 잘 아는 아내보다는 중1 딸이 걱정이었다. 나처럼 덩치 있는 남자도 떠밀려 그 골목을 겨우 통과했다. 그 골목 인파를 보고선, 다른 길로 가려고 했지만, 내 몸은 이미 내리막길로 내려가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보이지 않는 딸 이름을 부르며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6ㆍ25 때, 1ㆍ4후퇴 때 가족 잃어버린 사람들 심정이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을 케어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도 들었다.”

-어떻게 그 골목길을 통과했나.

“사람들에 치여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골목이었지만, 호텔 벽 쪽으로 바짝 붙어서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게 사람이 많았는데도 다행히 휴대폰은 터져 딸과 통화가 됐다. 딸한테 그 벽을 알려주면서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내려가서 대로변에서 만나자고 했다.”

-골목길을 올라오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나.

“너무너무 많았다. 사고는 오후 10시 넘어서 났지만, 6시 약간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생명을 위협을 느낄 정도로 많았다. 골목 위 상황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으로서, 그쪽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한테 ‘제발 올라가지 마세요’라고 고함치면서 내려왔다. 그런데 올라오는 사람들은 저 사람 뭐지 하는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경찰에 신고를 따로 안 했나.

“솔직히 너무 지쳐 있었다. 그 골목 하나 통과하는 데 땀이 범벅이 돼 그냥 초주검 상태였다. 6시 반쯤 지하철역 근처 신발 가게 앞에서 딸과 아내를 만났는데, 아내가 신고를 했다기에 하지 않았다. 딸도 심한 두통을 호소해서 빨리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지하철로 귀가했나.

박씨 “걸어서 이태원을 벗어난 뒤 택시를 탔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나오는 1번 출구가 아닌 다른 출구를 이용했다면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청난 인파에 시달리고 나니 그럴 엄두가 안 났다.”

서씨 “사실 5시 반부터 지하철역은 아수라장이었다. 딸과 다른 곳에 있다가 아내 가게에 잠깐 들르겠다고 해서 5시 20분쯤 지하철을 이용해 이태원역에서 내렸다. 인파가 내가 본 지하철역 인파 중 역대급으로 많았다.”

-(서씨에게) 지하철역 출구로 나오는 데 얼마나 걸렸나

“10분 걸렸나. 평소보다 한참 더 걸렸다. 전철에서 내린 뒤 엘리베이터 타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에스컬레이터 줄은 너무 길어 계단을 이용했다. 역사가 깊어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계단인데, 그것도 미어터져 제대로 올라갈 수도 없었다. 개찰구로 나서는데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역무원이 막 소리를 지르면서 정리 중이었는데, 교통카드를 찍고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역무원은 뭐라고 외친 건가.

“한 줄로 서라, 이쪽으로 가라는 등의 소리였다. 그런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통제가 힘든 상황이었다. 출구로 올라가는 것도 힘들었지만, 당시엔 개찰구를 통과하기가 더 힘들 정도로 지하 공간에 사람이 많았다."

정민승 기자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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