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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끊겨 캄캄한 키이우... 우크라 "해외 피란민, 올겨울엔 귀국 말라"

입력
2022.10.26 19: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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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폭격에 발전소 등 기반시설 파괴
피란민 귀국 시 감당 안 돼
우크라, 절전 운동 돌입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러시아 공격에 따른 정전으로 암흑에 휩싸였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가 러시아 공격에 따른 정전으로 암흑에 휩싸였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해외 피란민들은 내년 봄까지 돌아오지 말 것을 부탁한다. 우리는 이번 겨울에 살아남아야 한다."

혹한기를 앞둔 우크라이나 정부가 외국에 머물고 있는 자국 피란민에게 내년 봄까지 귀국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들의 귀국으로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에너지난이 더 악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발전소의 3분의 1이 파괴된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전국에서 전기와 난방, 물 등이 끊겨 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발전소만 골라 때리는 러시아

이리나 베레슈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국영 TV와의 인터뷰에서 "봄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라며 "가능하다면 당분간 해외에 더 머물라"고 말했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개전 이후 해외로 몸을 피한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770만 명에 이른다. 우크라이나 전체 인구(4,400만 명)의 17.5%다.

이들의 귀환을 가로막는 건 겨울을 노린 러시아의 전술 변화다. 우크라이나 남부 등 정규전에서 수세에 몰리자, 장거리 미사일과 드론으로 발전소 등 기반시설을 골라 때리는 변칙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특히 민간인 피해를 키우기 위해 전력과 난방을 동시에 제공하는 열병합발전소(TETS)를 노리고 있다. 주변에 장애물이 없는 지상에 들어서는 변전소와 변압기도 러시아군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 목표물을 향한 몇 번이고 반복되는 공격에 사실상 복구도 소용없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국영 전력회사인 우크레네르고의 볼로디미르 쿠드리츠키 최고경영자는 "러시아군은 가능한 한 많은 피해를 주기 위해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며 "시스템을 재건하는 것보다 미사일로 파괴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전등 없는 광장에서 거리 음악가들이 조명 하나를 세워 놓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키이우=AP 뉴시스

1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전등 없는 광장에서 거리 음악가들이 조명 하나를 세워 놓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키이우=AP 뉴시스


우크라 절전 운동 돌입...전방 부대 전략 약화 우려

러시아의 노림수는 전선을 후방 지역으로 확대해, 전방의 정규군 전력을 약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북서부의 발전소에서 전쟁 최전선의 남쪽과 동쪽으로 전기를 보낼 능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며 "러시아의 발전소 공격은 우크라이나군의 전력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는 결국 키이우를 비롯한 전국 도시에서 몇 시간씩 전기를 끊는 순환 단전에 돌입했다. 전력 소모가 많은 가전제품 사용 중단을 권고하거나 전기로 움직이는 버스를 디젤 버스로 바꾸는 등 절전운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주거용 건물의 엘리베이터에는 갑작스러운 정전에 대비한 '비상용 키트'까지 등장했다. 이 키트에는 손전등과 물, 과자와 성인용 기저귀 등이 들어 있다.

전 국민이 고통 분담에 나서면서 전국이 암흑에 휩싸이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다만 에너지컨설팅회사인 딕시그룹의 올레나 파블렌코는 "모든 지역에 전기 공급은 가능하지만, 정전이 더 길어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WP는 "러시아의 이 같은 공격은 민간인에게 고통을 가하고 대규모의 새로운 난민을 낳으면서, 전쟁으로 황폐해진 우크라 경제를 잠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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