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불평등으로 가는 정치

입력
2022.10.21 18:00
22면
구독

불평등 핵심인 빈곤노인 대책 잇따라
공공일자리 축소, 전면 기초연금 우려
정책대상 면밀한 분석 없으면 역효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시민단체인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회원들이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 재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시민단체인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 회원들이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논의 재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요즘 진보진영에서 화제가 되는 책이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의 ‘좋은 불평등’이다. 최 소장은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정책통으로 이 책에서 재벌편향 정책, 신자유주의 편향정책, 비정규직 남용정책 등 ‘3대 적폐’가 불평등을 확대했다고 인식하는 진보진영의 고정관념을 통계로 논파한다. 실사구시를 바탕으로 한 논리 전개도 설득력이 있지만 문제 핵심으로 에두르지 않고 직진하는 게 인상적이다. 그는 우리 사회 불평등 문제의 핵심을 ‘저임금노동자’ 문제가 아니라 ‘빈곤노인’ 문제라고 단언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통계에 단선적으로 매몰되지 말고 노인세대 내부의 소득자산격차를 세심히 살펴 차등적 소득보장제도를 만들자고 그는 제안한다. 구체적으로 공적복지제도가 성숙하지 않았는데 가족복지제도는 해체되는 시기에 노인이 된 75세 이상의 ‘후기노인’과 75세 이하인 ‘전기노인’을 구분, 차등적인 소득보장제도를 만들자는 제언이다. 하지만 이는 최 소장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포괄하는 연금개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요즘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하후상박 형태의 차등적 기초연금 지급에 대한 제안이 꽤 나왔기 때문이다. 소득과 자산 모두 빈곤한 하위 20% 정도의 노인들에게 자원투여를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지난달 발간된 OECD의 ‘한국연금제도 검토보고서’ 역시 기초연금의 개인별 지급액을 늘리고 지급대상자를 축소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기초연금을 일괄 인상하는 경우와 차등 인상하는 다양한 사례를 비교하면, 60대, 70대, 80대에게 각각 30만 원, 40만 원, 50만 원으로 차등지급했을 때 불평등 완화 효과가 가장 크다는 시뮬레이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 여당과 야당의 노인정책은 엉뚱하기 짝이 없다. 특히 현재 소득하위 70%에게 30만 원씩 지급하는 기초연금액을 40만 원으로 올리고 모든 노인에게 주겠다는 민주당의 제안은 재원 마련의 현실성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문제투성이다. 불평등 완화라는 목표에도 맞지 않고 필요의 크기에 따라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복지 기본원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효과도 검증되지 않고 사회적 합의도 어려운 이재명 대표의 차기 대선용 ‘기본소득’ 의제를 부각시키려는 이유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전통적으로 노령층이 지지기반인 여당의 노인일자리 정책도 결과적으로 노노 불평등을 낳는다. 여당은 60만8,000개인 공공형 노인일자리 중 내년 6만1,000개를 줄이기로 했다. 한달 10만~27만 원의 활동비를 받는 일자리로 문화해설사, 급식자원봉사 등 전문 기술 없이도 일할 수 있다. 대신 취업과 연계하는 민간ㆍ사회서비스형 일자리 3만8,000개를 늘릴 계획이다. 시장친화적이고 월 60만 원을 받는 괜찮은 일자리이지만 일정 학력이나 기술을 요구한다. 공공형 평균연령이 76.6세, 사회서비스형이 70.0세라는 통계를 보면 학력도 낮고 가장 가난한 ‘후기노인’의 일자리를 줄이고 고학력에 소득ㆍ자산 여유가 있는 ‘전기노인’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얘기다. 공공형일자리를 노인복지 관점이 아니라 세금 잡아먹는 질 낮은 일자리라는 시각으로만 접근한 결과일 터다. 내년에는 한 푼 용돈이라도 아쉬운 고령 빈곤노인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적 삶을 보장하겠다는 철학(민주당), 정부보다는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철학(국민의힘)으로 정책 경쟁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정책 대상자들의 실상을 세밀히 살피지 못하거나 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증 없이 던져지는 정책은 의도와 다른 반작용, 역효과를 낳기 마련이다. 지금 양당의 노인정책이 꼭 그런 모양이다.

이왕구 논설위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