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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선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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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6년 10월 19일, 미합중국 관보에 ‘포시온(Phocion)’이란 이의 글 한 편이 실렸다. 조지 워싱턴 초대 정부의 국무장관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이 흑인 노예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이었다. 민주공화당의 제퍼슨과 연방당 존 애덤스의 제2대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연방정부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연방파와 연방 권력에 대한 견제에 중점을 둔 공화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와중이었다.
문제의 ‘포시온’은, 나중에 밝혀진 바 제퍼슨과 함께 워싱턴 내각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필명이었다. 해밀턴은 북미 원주민을 포함, 유럽 각국과 전쟁도 할 수 있는 처지인 만큼 강력한 연방정부가 필요하며 영국 국왕에 맞먹도록 대통령을 종신직으로 하고 주지사 임명권까지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맹렬한 연방주의자였다. 그는 10월 15일부터 11월 24일까지 같은 필명으로 제퍼슨과 공화파를 비난하는 글을 무려 25편이나 썼다. 그의 글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애덤스는 53.4% 지지율로 2대 대통령이 됐고, 제퍼슨은 부통령이 됐다.
하지만 사실 선공(先攻)은 제퍼슨이 날렸다. 그와 공화당 정치인들이 후원한 매체가 1792년 해밀턴이 동료의 아내와 간통한 사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해밀턴은 그 폭로 때문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성 스캔들 관료로서 재무장관 직을 사임해야 했다. 1796년 관보 폭로는 보복전인 셈이었다. 1800년 선거에서 제퍼슨은 61.4% 지지율로 3대 대통령이 됐지만, 해밀턴의 간통 폭로에 앞장섰던 출판업자가 자신의 인사청탁이 거절당한 데 앙심을 품고 제퍼슨이 ‘첩’을 둔 사실을 1802년 폭로했다. 그 ‘첩’은 사별한 전처 마사(Martha Jefferson)의 이복 동생 샐리 헤밍스(Sally Hemmings)였다.
2000년 제퍼슨재단은 사료와 DNA검사 등을 통해 헤밍스의 아들(Eston) 등이 제퍼슨의 후손이 맞다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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