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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자산 한반도 배치, 美 국방장관이 6년 전 퇴짜 놨다[문지방]

입력
2022.10.17 13:0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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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략자산 한반도 '상시 순환 배치'
2016년 SCM서 美 카터 장관이 거부
6년 지나 韓 여전히 전략자산 매달려
北 핵 고도화…전술핵 재배치 주장 ↑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한민구(오른쪽) 국방부 장관과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이 2016년 10월 20일 미 펜타곤에서 열린 제48차 연례안보회의(SCM)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한민구(오른쪽) 국방부 장관과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이 2016년 10월 20일 미 펜타곤에서 열린 제48차 연례안보회의(SCM)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016년 10월 20일(현지시간) 미국 펜타곤(우리의 국방부).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이 참석했습니다. SCM은 한미 양국 국방 고위급 각료가 1968년부터 매년 만나 한반도 안보상황을 논의하고 연합 방위능력을 높이기 위한 협의체입니다.

회의가 끝나면 공동성명을 발표합니다. 기자회견장에서 결과를 기다리는데 이상한 기류가 흘렀습니다. 우리 정부 당국자가 쫓기는 듯 불안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겁니다. 회의마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무언가 틀어진 건가’라며 웅성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모든 관심은 ‘미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쏠렸습니다. 2016년 내내 북한의 도발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1월 4차 핵실험, 9월 5차 핵실험을 잇따라 감행했고, 그사이 광명성 4호로 명명한 위성을 쏘아 올렸다고 주장하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능력을 발전시켰습니다. 북한은 이외에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심지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동원한 무력시위를 벌이며 위협수위를 급속도로 높였습니다.

한반도 안보위기가 심각했습니다.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확실한 대응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습니다. 유사시 북한 지휘부와 주요시설에 결정적 타격을 가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간담을 서늘케 할 ‘전략자산’이 최우선 해법으로 꼽혔습니다.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 전초기지인 괌에 B-1폭격기 60여 대, B-2스텔스폭격기 20여 대, B-52장거리폭격기 80여 대를 운용할 때입니다. 이들 전략자산 3총사를 한반도에 투입해 북한의 야욕을 잠재울 심산이었습니다.

잔뜩 기대한 '전략자산 상시 순환 배치'...SCM 공동성명에서 빠져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가 2017년 12월 F-35 전투기 등의 호위를 받으며 한반도 상공을 날고 있다. 연합뉴스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 B-1B가 2017년 12월 F-35 전투기 등의 호위를 받으며 한반도 상공을 날고 있다. 연합뉴스


SCM 공동성명은 그 보증수표였습니다. 한미 양국의 의지가 담긴 강력한 문구가 담길 것으로 기대가 컸습니다.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듯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붙박이로 갖다 놓지는 못하더라도, 상시 배치 수준으로 끌어올려 빈틈없는 억지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실제 정부 고위당국자는 SCM에 앞서 이 같은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미국과의 실무협상에서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 배치’에 합의했다는 겁니다. 카터 장관의 형식적인 승인절차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가령, B-1B폭격기가 한국에서 365일 출격대기를 하지 않더라도 수개월 단위로 번갈아 가며 순환 배치를 반복하면 상시 배치와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구상입니다.

하지만 공동성명은 맹탕이었습니다. 어디에도 ‘전략자산’이나 ‘배치’라는 표현은 없었습니다. ‘확장억제의 추가적인 조치들’이라고 모호하게 언급한 게 전부였습니다. 확장억제는 미국이 동맹에 대한 위협이나 공격을 핵우산, 재래식 타격, 미사일 방어 등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동원해 억제한다는 개념입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던지 한 장관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 배치를 포함해 많은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짤막하게 말했습니다. 반면 카터 장관은 전략자산에 대해 아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공동성명에 없는 내용을 한국 장관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셈입니다.

美 카터 국방장관이 반대...또다시 부각된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하에 전술핵 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함께 실린 미사일 발사장면과 이를 지켜보는 김 위원장. 평양 노동신문=뉴스1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0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하에 전술핵 운용부대들의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함께 실린 미사일 발사장면과 이를 지켜보는 김 위원장. 평양 노동신문=뉴스1


이후 들어보니 카터 장관은 SCM에서 전략자산 배치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SCM 회의가 늦게 끝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양국 입장이 갈려 진통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당시는 버락 오바마 정부 때였습니다. 전 세계를 상대로 군사력을 운용하는 미국 입장에서 전략자산이 한반도에 발이 묶이면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없으니 끝내 응할 수 없었던 겁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정부가 미국에 과도한 기대를 걸고 마치 전략자산이 한반도를 24시간 내내 보호하는 것처럼 섣불리 결과를 예단했던 셈입니다.

이후 꼭 6년이 지났습니다. 2016년 10월과 비슷한 양상이 한반도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를 비웃듯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거침이 없습니다. 7차 핵실험은 언제 버튼을 눌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국이 가장 신경 쓰는 ICBM과 SLBM 도발 시점도 호시탐탐 엿보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또다시 확장억제를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미국의 막강한 전략자산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술핵 재배치’ 주장에도 점차 힘이 실리는 모양새입니다. 미국이 이전보다 훨씬 강화된 수준으로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투입하지 않을 경우 지난 30여 년간 유지해온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깨뜨릴 수 있다는 압박 제스처나 다름없습니다.

美 전략자산에 매달리는 양상 반복...6년 전과 뭐가 달라졌나

한미 연합 해상훈련 첫날인 지난달 26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서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출항하고 있다. 부산=뉴스1

한미 연합 해상훈련 첫날인 지난달 26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서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출항하고 있다. 부산=뉴스1


하지만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미국이 호응할지는 의문입니다. 이번에도 관건은 전략자산을 어떻게 한반도에 전개할 것인지에 달렸습니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적시 전개”를 강조합니다. 상황이 발생하거나 임박하면 전략자산을 바로 투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미국의 확장억제가 강화됐다고 해석합니다.

다만 6년 전에도 국방부는 전략자산의 상시 순환 배치를 설명하며 “위기상황에 즉응할 수 있는 전략자산 투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즉응’과 ‘적시’, 딱히 차이를 알 수 없는 표현입니다. 그사이 미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핵잠수함이 한반도에 누차 다녀갔습니다. 반면 북한은 아랑곳없이 무력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확장억제와 전략자산이 진정 북한의 도발을 차단할 수 있는지 의문시되는 대목입니다.

“미국은 북한을 초토화시킬 능력을 보유해왔다. 북한이 추가 핵무기를 갖는 동안 앉아서 지켜보지는 않을 것이다.” 2016년 SCM이 열리기 전날 존 케리 당시 미 국무장관이 기자회견에서 강조한 말입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북한은 ‘핵 선제사용’을 법에 규정했고, 더 나아가 핵무기를 소형화·경량화한 전술핵을 꺼내 들고 있습니다. 핵개발의 사실상 마지막 단계입니다. 6년 전의 엄포는 이제 공염불이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반도 위기를 해결할 구세주인 양 오로지 미국의 전략자산을 갈망하는 예전 모습 그대로입니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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