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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실패'가 보여주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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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그는 보수로 간 진보주의자였다. 지금은 극우 인사, 망언 제조기로 추락했다. 젊은 시절의 경력은 화려했다. 민주화 운동으로 두 차례 제적과 투옥, 25년 만의 대학졸업, 청계피복 공장 ‘시다’ 출신에 민중당 노동위원장까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투사이자 투철한 노동운동가였다. 열관리기능사 등 국가자격증 9개는 뜨거운 삶의 증표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그를 영입하자 좌우 진영 모두 충격에 빠졌다. 보수진영은 우리를 괴롭힌 빨갱이라고 했고, 진보진영은 변절자라고 했다. 그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국민들은 합리적 진보와 양심적 보수를 접합한 중간세력인 그에게 기대를 모았다. 자서전 ‘아직도 나는 넥타이가 어색하다’ 출간 즈음 그는 “그 시대를 잊지 않고 젊은 시절에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실세 정치인 박지원을 누르며 부천·소사에서 내리 3선을 했다. 그리고 민선 4, 5기 경기도지사를 지내며 대선 행 직행 표까지 손에 쥐었다. 거침이 없어 보였지만 거기까지였다.
돌아보면 한번 굽어진 소신은 펴지지 않는 것 같다. 외환위기가 째깍째깍 다가오던 1996년 말 ‘국회의원은 로봇이 아니다’며 반대 뜻을 굽히지 않던 그는 결국 노동법 날치기에 가담했다. 그가 없어도 법 통과는 가능했던 만큼 투표는 당 충성심을 드러낸 의도였다. 호랑이 굴에서 정신을 놔버린 이유치고는 가벼워 보였다.
결정적 가벼움은 20대 총선 대구 정치1번지에서 지역주의에 맞서던 김부겸과의 잘못된 싸움이었다. 보수 거물을 노리던 그는 김부겸이 위장된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지만 유권자는 그를 택하지 않았다. 그의 빨갱이 프레임은 진보를 향한 것만도 아니었다. 수도권 규제를 풀지 않는 이명박 정부를 향해서도 공산당보다 못한 정부라고 했다.
철 지난 종북 타령은 사흘 전 국정감사에서 다시 도졌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발언해 퇴장당했다. 엊그제 라디오 방송에선 ‘문재인은 총살감’이란 3년 전 발언에 대해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고 했다. 이런 논리라면 문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도 김일성주의자이고, 그런 사람을 존경하는 다른 사람도 김일성주의자가 된다. 마르크스 마오쩌둥 체 게바라를 존경하면 마찬가지로 다 공산주의자다.
이제 그는 태극기 부대, 극우 유튜버, 오로지 특정 신조를 위해 매진하는 사람의 모습이다. 뱀에게 사로잡혀 독 든 사과를 마다하지 않는 것 같은, 합리적이지도 납득하기도 어려운 신조다. 공직자가 되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주장한다면 더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위기를 옆에 두고 한가한 모습이 아닐 수 없고, 안에서 썩어 무너졌다던 조선의 모습과 겹치지 않을까 겁도 난다. 그러잖아도 양극화에 따른 분열과 대립이 심한 사회다. 그와 같은 이분법적 대립 축으로 수습하기 어려워졌고, 그 처방은 서로에 대한 공감 수준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경사노위 위원장은 부적격 논란에도 그로선 그 시절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하지만 젊은 시절, 그 시대의 당당함과 의로움은 어디론가 가버렸다. 애초의 다짐으로 돌아갈 것은 아니라 해도 그에게 사람들이 기대했던 중립 행보도 없다. 위원장이 이렇다면 노동계 현안 합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지 않게 된다.
그가 걸어온 행보는 우리 사회의 한 실험이지만 결국 실패한 모델이다. '김문수 실험'의 결과는 ‘중도, 통합은 없다’는 비극일 것이다. 그가 보여주고 있는 한국의 반지성주의가 장차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는 또 다른 걱정이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트럼프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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