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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낳는지 그렇게도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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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워킹맘 후배가 고충을 털어놨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느라 사무실에 1, 2분 늦게 도착했더니 상사가 눈에 불을 켜고 근무 태도를 지적하더란다. 그날 유독 등원 준비가 늦어진 사정을 얘기했건만 더 일찍 일어나지 그랬냐는 핀잔이 돌아왔다. 억울함이 폭발할 찰나,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경황 없어 주차장에 킥보드를 두고 갔나 본데, 자기 아이 데려다 주면서 어린이집에 대신 갖다 놓겠다고. 두 남자가 어쩜 그리 비교될까, 우린 공감했다. 한쪽은 육아에 손도 안 대본 티가 너무 나 얄밉고, 한쪽은 세심한 배려가 고맙다.
온 나라가 출산율을 걱정한다. OECD 평균의 절반 수준(0.81명)이라니 그럴 만하다. 일할 사람이 줄어든다에서 시작한 걱정의 스케일이 나라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는 정도로 커졌지만, 출산율은 반등 기미를 안 보인다. 왜 이렇게 안 낳는지,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지하철 임산부 좌석을 차지한 얌체 승객, 출산율 저하에 기여하는 중이다. 분홍색 임산부 배지를 봐도 일어날 생각을 않는 건 몰라서인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캐묻고 싶다. 끊어질 듯한 허리로 지하철에 서 있는 고통은 감수하더라도, 아이 낳을 병원조차 충분치 않은 현실에 덜컥 겁이 난다. 지난해 기준 250개 시·군·구 중 63곳은 산부인과가 없거나 있어도 분만이 어렵다.
낳고 나면 돌봄 굴레의 시작이다. 생후 6개월도 어린이집에 온다고 하니 “걸어는 다니니까”라던 대통령 반응에 부모들은 기가 막혔다. 부부가 출산휴가, 육아휴직 알차게 써도 아이는 다 크지 않는다. 가족돌봄 제도를 활용한 여성의 52%, 남성의 46%가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하는 수 없이 사표 낸 여성은 ‘경단녀’가 되고, 복귀에 기약이 없다.
어린이집,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놓고도 전전긍긍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아동학대 사건이 혹여 내 일이 될까 조마조마하다. 믿음을 저버린 기관과 교사 처벌은 늘 솜방망이에 그친다.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속수무책이다. 동네 병·의원은 대부분 퇴근 시간 전에 닫는다. 올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7.5%에 불과하고, 지난 5년간 연평균 132개 소아과 병원이 폐업했다.
입학은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다. 수시로 바뀌는 교육제도와 복잡한 입시는 아이의 자기주도 성장을 방해하고 부모의 개입을 강요한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 돼버렸으니 고교를 졸업해도 사교육비가 도통 줄지 않는다. 20년 키워 어른 되면 끝일까. 지난해 기준 만 19~49세 성인 남녀 10명 중 3명이 독립하지 않고 부모와 동거 중이란 조사결과는 현실을 보여준다.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개편하고 내년부터 출산 첫해 월 70만 원씩 부모급여를 준다고 했다. 컨트롤타워는 전에도 있었고, 현금 지원도 해봤다. 그 결과가 지금이다. 어떤 교수는 아이 1명 낳으면 1억 원씩 주자고도 한다. 돈으로만 해결할라치면 1억 갖고 어림없다.
근무 태도를 지적받은 후배가 “저 보면서 여자 후배들이 결혼도 그렇지만 애는 못 낳을 것 같다더라”고 했다. 워킹맘을 지켜보는 젊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을 자연스레 꺼리게 된다. 이런 현실을 모르면 대통령이 강조한 “과학과 데이터에 기반한 저출생 대책”은 공허하다.
출산과 육아는 사회 전체가 뒷받침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산모와 아이가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고, 공교육 안에서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며, 육아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과 다름없이 직장을 다닐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주는 기쁨은 크고 소중하다. 이대로라면 그 기쁨을 누릴 기회를 국가가 뺏는 거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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