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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국익, 정의의 함수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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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닉슨의 사임으로 1974년 8월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1913~2006)가 9월 ‘대통령 선언 4311호’를 통해 닉슨의 임기 중 범법행위에 대한 “전면적이고, 예외 없는, 절대적인 사면” 방침을 발표했다. 이로써 워터게이트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 재판과 별개로 닉슨은 일체의 법적 심판을 면제받았고, 형사기소와 재판을 통한 정의를 기대했던 여론은 포드의 그 결정에 분노했다.
포드는 대국민 TV연설을 통해 국가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선택이 사면이라 판단했다며 “우리 모두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비극의 책임 일부를 지고 있고, 누군가는 거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나는 그 일을 나만 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였다가 1973년 닉슨 정부의 부통령 스피로 에그뉴가 뇌물 사건에 연루돼 사임하면서 부통령이 된 그는 닉슨의 하차로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선거 없이 부통령-대통령을 지냈다. 개방적이고 진솔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 덕에 취임 초기 70%에 이르던 지지율은 이 발표 직후 급락했고, 그도 ‘부정’에 연루됐으리라는 의혹을 샀다. 비서실장도 그 결정에 항의하며 사임했고, 그도 10월 17일 링컨 이후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 하원에 출석해 그 결정을 해명해야 했다. 그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 43석, 상원 3석을 잃었고, 그도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지미 카터에게 패했다.
2001년 존 F. 케네디 재단은 포드와 존 루이스 상원의원에게 ‘용기의 정치인 상(Profile in Courage Award)'을 수여했다. 선출직 공직자 가운데 비범한 용기로 의미 있는 정치적 결단을 내린 이에게 주는 그 상을 수여하며 테드 케네디는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국가가 난파 지경이던 때, 포드 전 대통령은 다수의 의사와 달리 자신의 정치 생명까지 희생하며 미래를 위한 결단을 내렸다.(…) 그의 용기와 헌신 덕에 우리는 비로소 워터게이트의 비극을 뒤로하고 치유의 여정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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