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밥 먹는 고대생, 두 배 늘었다

공짜 밥 먹는 고대생, 두 배 늘었다

입력
2022.10.10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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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암동 성복중앙교회 교인들이 2020년 4월 대학생에게 무료 도시락을 나눠 주고 있다. 김영훈 기자

"배추가 만 원이 넘더라니까." "아이코, 고추는 어떻고."

활자가 살아난다. 정부 등이 발표한, 그래서 기사에 박힌 숫자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다. 평생 살림을 도맡은 동료의 일상 체험은 날것의 사실이다. 설거지하면서 곱씹었다. '물가가 심각하긴 하구나.' 그날 귀로 들은 것보다 더한 장면을 곧 눈으로 목격했다.

매주 O요일, 출근 전 1시간 30분 남짓을 식당에서 일한다. 형편이 어려운 고려대 학생과 인근 청년에게 2013년부터 무료로 아침밥을 주는 교회 식당이다. 처음엔 기부만 했다. 취재 현장을 떠나 데스크를 맡으면서 '새벽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구인 공고에 혹했다. 2017년 일을 시작했으니 해외 특파원 임기 3년을 제외하면 햇수로 3년째다.

설거지 전담이다. 오전 7시부터 식사를 마친 청년들이 건네준 큰 접시와 국그릇, 수저를 초벌로 물에 담그고 씻고 헹구고 건조기에 말린다. 수저는 다시 끓는 물에 소독한다. 잔반은 음식물쓰레기통에 버린다. 대형 밥솥들과 반찬 배식용 도구들을 설거지한다. 50~70대 여성 동료 네댓 명은 요리, 배식, 식탁 정리, 주방 청소를 나눠 맡는다.

얼마 전 그날은 3년 만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청년들이 쉴 틈 없이 밀려왔다. 준비한 반찬이 다 떨어져서 급하게 김을 자르고 계란프라이를 해서 내느라 분주했다. 설거지한 식기가 얼추 110인분이 넘었다. 땀으로 범벅이 됐다. 3년간 평균 50~60명이 찾아왔던 걸 감안하면 약 두 배 늘어난 셈이다. 올 들어 조금씩 증가 추세였으나 이 정도는 아니었다.

사정을 살피니 최근 작성된 몇몇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학식 대란… 대학 학생식당 줄줄이 가격 인상' '대학생, 학식 가격 인상 반대 집회' '굶는 게 나아요… 학식 가격 인상에 갈 곳 잃은 대학생들'. 정부와 정치권, 언론이 "위기네" "아니네" 따지고 있는 사이 청년들은 이미 위기 속에 빠져 있구나 절감했다. 현실은 활자보다 심각했다. 그날의 보람은 부끄러움으로 치환됐다.

3고(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위기는 시작됐다. 가장 낮은 곳부터 물이 차오르고 있어서 경제적 형편상 상층에 있는 관료, 정치인 등은 아직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직접 체감하지 않으니 각종 경제 지표와 시장이 악화하는 데도 낙관론을 펼치는 것이다.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과 외환보유액 등을 내세운 논리는 나름 탄탄하다. '제2의 IMF'가 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예측은 무릇 합리적이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는 합리와 논리로만 풀리지 않는다. 경제는 심리이고 체감이다. 더구나 지금 상황은 베테랑 경제 관료조차 "예측을 벗어났다"고 실토할 만큼 불확실성이 잠식하고 있다. "물가 정점은 10월"(부총리), "복합 위기에 선제 대응"(대통령)이라는 전망과 수사가 왜 안 먹히는지, 왜 신뢰받지 못하는지, 왜 한가하게 들리는지 반성해야 한다.

그 시작은 공감이다. "(한국의) 경제 위기 재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외부' 평가에 기댈 게 아니라 "굶는 게 낫다" "못 살겠다"는 '우리 내부' 청년과 서민의 절규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다음은 실행이다. 정부 실책을 방어한다는 인상을 지우려면 적합한 정책으로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를 보이기 바란다. 의전에 가려 물정 모르는 현장 점검, '겨울철 공공 건물 난방온도 17도로 낮춰' 같은 구태는 '능력주의 정부'의 무능만 입증할 뿐이다.

고찬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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