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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만든 기적의 논리

입력
2024.07.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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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20일 김건희 여사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인근 대통령 경호처 부속청사. 연합뉴스

검찰이 20일 김건희 여사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인근 대통령 경호처 부속청사. 연합뉴스

17대 대선을 2주 앞둔 2007년 말 검찰은 "다스는 이명박(MB) 후보자의 것이 아니다"라고 발표했다. 다스가 MB 것으로 인정되면 재산 허위 신고에 따른 공직자윤리법 위반은 물론이고 횡령 혐의까지 더해져, MB는 대통령은 언감생심이고 감옥에 갈 판이었다. 놀라운 사실은 검찰이 계좌추적 등 물적 증거보다는 다스가 MB 것이라고 진술한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를 판단 근거로 댔다는 점이다. 검찰이 그렇게 결론을 내리자, 다스는 MB 것인데도 MB 것이 아닌 게 돼버렸다. 검찰 발표가 얼마나 황당했던지, MB 측근은 당시 얘기를 꺼내며 “거짓을 참이라고 발표하는 걸 보고, 검찰이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알게 됐다”고 비꼬기도 했다. 실제로 다스는 MB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4억 원을 지급했고, MB와 가족들은 다스 법인카드로 5억 원을 사용했다.

그런데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지난해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부실 수사’라는 야당 의원들 지적에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2018년 검찰 수사로 다스가 MB 소유로 밝혀지면서 11년 전 수사는 잘못된 것으로 확인됐는데도 ‘그때는 몰랐다’고 변명할 뿐이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부끄러워서 얼굴도 들지 못했을 것 같은데, 수사팀 가운데 누구도 그 흔한 유감 표시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 검찰 요직을 꿰차며 영전하는 등 외부 시선은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검찰이 범죄사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면, 그 이유가 어찌 됐든 ‘부실 수사’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특히 다스 실소유주 수사처럼 뒤늦게 범죄사실이 드러났다면 수사팀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대장동 개발업자 이강길은 부산저축은행 대출 알선 대가로 브로커인 조우형에게 2009~2010년 10억 원을 전달했다. 하지만 검찰은 2011년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에선 이런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고, 2015년 뒤늦게 조우형을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했다. 언론이 조우형과 박영수 전 특검의 친분을 지적하며 2011년 수사 때 조우형의 금품수수 범죄를 규명하지 못한 점을 문제 삼자, 검찰은 '희한한 논리'로 방어막을 쳤다.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한상진 기자의 공소장을 보면, 검찰은 이례적으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 2011년 대검 중수부의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와 관련한 수사 범위를 기재했다. 검찰은 당시 수사는 부산저축은행 경영진과 대주주 비리와 관련한 것이라, 조우형이 연루된 대장동 사업 관련 대출 사건은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조우형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검찰 내부에서 임의로 정해놓은 수사 범위를 들이대며 언론 보도까지 문제 삼은 것이다.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명품백 수수 사건을 지켜보면 다스와 부산저축은행 수사가 오버랩된다. 검찰이 특혜 논란을 자초하면서 김 여사 뜻대로 조사한 걸 보니 무혐의 처분이 예정된 것 같다. 아마 장황하게 무혐의 이유를 설명하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다. 만약 한참 뒤에 결정적 증거로 수사 결과가 뒤집혀도 검찰 수사팀 누구도 고개 숙이지 않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수사 범위가 아니었다'고 말하면 되기 때문이다. 검찰이 만든 기적의 논리다.

강철원 엑설런스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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