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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태양·똥으로 전기 만들어 부자 된 독일 펠트하임 [별의별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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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지구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유럽의 마을과 도시를 탐험하는 기획을 신은별 베를린 특파원이 한 달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겨울에 난방 끄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야?"
유럽이 이 같은 걱정으로 술렁이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제재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유럽에 수출하는 천연가스 밸브를 잠그면서 에너지 비용이 치솟았다. 러시아와 끈끈한 관계인 국제 산유국 협의체 '오펙 플러스(OPEC+)'가 원유 생산을 대폭 줄이기로 해 걱정은 더 커졌다. '난방이냐, 빵이냐' 사이에서 고민할 처지가 된 유럽인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 와중에 느긋한 마을이 하나 있으니, 식당은커녕 식료품 가게조차 없는 독일 동부의 작은 마을 '펠트하임'이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를 겪고 나서야 각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눈길을 돌리는 '에너지 자립 100%'의 성취를 펠트하임은 12년 전에 달성했다. 바람과 태양으로 만든 재생에너지를 통해서다. 독일에서 최초이고,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에너지 자립 마을이다.
'에너지 공포'는 한국에도 닥쳤다. 자원을 무기로 쓰는 자원 부국들의 횡포에서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어느 때보다 커졌다. 한국일보는 그 답을 찾기 위해 펠트하임을 찾았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러이언브리첸에 속한 면적 15.7km²의 마을 펠트하임. 서울 동대문구(14.21km²)보다 조금 크고, 동작구(16.35km²)보다 작은 규모다. 주민은 겨우 130명이고, 마을을 오가는 버스도 하루 6대가 전부다. 그러나 마을엔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한적한 마을 입구 우뚝 선 '에너지 자립마을' 표지판이 그 증표다.
자부심의 원천은 풍력발전이다. 마이클 라쉬만이라는 청년 사업가가 1995년 처음 설치한 풍력발전기 한 기가 시초였다(지금 그는 마을과 협업하는 독일 에너지 회사 '에네르기크벨레'의 이사이다). 55기로 늘어난 풍력발전기에서 연간 공급되는 전력은 약 2억5,000만 킬로와트시(kWh). 어림잡아 5만5,000가구가 쓸 수 있는 양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 중 1%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다른 지역에 판매한다.
재생에너지의 효용에 눈을 뜬 주민들은 에네르기크벨레와 다시 손을 잡았다. 마을에서 키우는 옥수수, 소∙돼지가 배출한 분변을 섞어 2008년부터 바이오가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서 연간 400만kWh 전력이 생산된다.
주민들은 "더!"를 외쳤다. 같은 해 태양광발전도 시작했다. 운도 따랐다. 버려진 군사부지를 정부가 에네르기크벨레에 단돈 1유로(약 1,390원)에 팔면서 부지를 사실상 공짜로 확보했다. 이 곳에 건설된 태양에너지 발전소에서 연간 274만 kWh 전력이 생산된다.
펠트하임이 얻은 건 뭘까. "너무 많죠!" 마을 가이드인 캐서린 톰슨씨 얼굴에 웃음이 피어올랐다.
우선 마을 주민들이 에너지 비용을 대폭 아낄 수 있게 됐다. 주민들이 내는 전기료는 kWh당 12센트(유로 기준). 올해 8월 기준 독일 평균 전기료가 kWh당 44센트이니, 3분의 1 수준이다. 톰슨씨는 "'전기·가스비 걱정? 우리 마을엔 없다"고 단언했다. 수입도 늘었다. 마을 주민들의 주 수입원은 여전히 농사이지만, 남는 에너지를 팔아 버는 돈도 쏠쏠하다. 재생에너지 사업 초기 단계에서 수익금이 주민들에게 배분되도록 계약한 덕분이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생겼다. 바이오가스 공장에서 일하는 주민이 30명쯤 된다.
마을 차원의 '에너지 안보'도 확보했다. "대기업 혹은 다른 국가가 우리가 쓰는 에너지를 함부로 끊거나 값을 올려 받을 수 없다"고 자신하는 주민들은 마음을 놓고 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엔 다른 지역에서 한껏 부러움을 사고 있다. '펠트하임의 기적'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톰슨씨는 "매년 수천 명씩 마을을 찾는데 요즘 더 많아졌다"고 했다.
'친환경 청정 마을'이라는 이미지도 얻었다. 펠트하임에서 82년 평생을 살았다는 지그프리드 카퍼트씨는 "풍력 터빈 설치 논의가 처음 시작됐을 때 아들이 재생에너지는 미래라고 설득해서 사업에 찬성한 기억이 생생하다"며 "이렇게 성공을 거둔 게 자랑스럽고 좋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친환경 이미지를 원하는 기업들과의 협업이 더 큰 황금이 될 수 있을 가능성에도 기대를 품고 있다.
마을 곳곳엔 재생에너지 생산 의욕이 넘쳐흘렀다. 달콤한 성공을 경험한 펠트하임은 이제 수소에너지 생산으로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자동차 기름까지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게 마을의 새로운 비전이다. 카퍼트씨도 "인류 모두가 가스, 석유, 석탄의 대체재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 않나"라며 "마을의 새 프로젝트도 무척 기대된다"고 했다.
펠트하임을 '먼 마을의 동화 같은 성공 스토리'로 소비하고 말 일이 아니다. 펠트하임의 성공 비책을 새겨야 한다.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마을과 도시는 한국에도 많다. 그러나 사업이 추진 단계에서 번번이 무산되곤 한다. 펠트하임과 달리 주민들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굳이 협업할 동기가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한국 전체의 재생에너지 생산은 여전히 저조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6.7%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0%)에 훨씬 못 미치는 건 물론, 36개국 중 꼴찌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라'는 국제사회의 압박에 귀 닫고 있는 것이다.
펠트하임 성공의 핵심 비결은 일관성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첫 논의를 시작한 이후 30년 가까이 부침이 없었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부터 건드린다.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폐기를 선언했고, 원자력발전소 비중을 높이는 대신 재생에너지 비중을 낮췄다. 5년 뒤 정권이 바뀐다면 에너지 정책은 또 흔들릴 것이다.
마이클 크나페 트러이언브리첸 시장을 만나 '한국에 전하는 팁'을 들었다.
교훈 1. 흑백논리는 금물
"마이클 라쉬만씨가 풍력 터빈을 설치하자고 마을에 제안한 게 1994년입니다. 1990년 동·서독 통일 직후 독일 전체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마을엔 '미래'를 이야기할 여유가 없었어요. 라쉬만씨는 "재생에너지가 마을의 미래"라고 끈질기게 설득했고, 당시 마을 행정가들은 "그래요, 한번 해봅시다"라며 손을 잡았죠. 주민들도 대화에 열려 있었고요. 소음, 농작물 피해 등 주민들의 우려부터 해소한 덕에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지금은 에너지 정책을 바꾸려 하면 '무조건 안 된다'고 반대부터 하죠. 그런 흑백논리를 버려야 해요."
교훈 2. 명분보다는 현실을
"사업을 시작할 때 특히 중요한 건 '참여하는 모두가 이득을 보는 구조인가'를 명확히 하는 겁니다. 특히 주민들이 얼마를 아낄 수 있고, 얼마를 벌 수 있는지를 분명히 제시해야 해요. 펠트하임 에너지 수급 의사결정엔 모두 49명이 참가하는데, 주민들도 많이 포함돼 있어요. 참가비로 3,000유로를 받는 것은 의사결정의 책임감을 높이는 장치이고요. 펠트하임 주민들이 유난히 친환경적이어서 성공한 걸까요? 아닙니다. 주민들이 소비자이면서 책임자가 되는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교훈 3. 겁먹지도, 거창하지도 말라
"우리가 작은 마을이니까 에너지 자립이 가능했을까요? 그런 냉소적 관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요. 펠트하임이 처음부터 '100% 에너지 자립'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세운 건 아니에요. 초기 사업 설계를 잘했고 사업을 착실하게 운영하다 보니 성공이 뒤따라온 거죠. 도시와 시골의 협업도 중요합니다. 재생에너지를 만들려면 땅과 물이 필요해요. 도시는 에너지와 관련해 시골에 빚지고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시골은 도시에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데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요. 그래야 국가 전체의 선순환이 가능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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