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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병사, 전투용품 '자기 돈'으로 구입... "국방장관 자결하라" 반발

입력
2022.10.08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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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정부 사이트 "필수품 구매 비용 지원 없다"
"식사도 자비로" 물자 부족에 징집병 불만 쌓여
혼란 책임은 국방부로…쇼이구 국방장관 해임설

지난달 29일 러시아 징집병들이 볼고그라드주(州) 프루드보이 지역에 있는 열차를 탑승하러 걸어가고 있다. 프루드보이=AP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러시아 징집병들이 볼고그라드주(州) 프루드보이 지역에 있는 열차를 탑승하러 걸어가고 있다. 프루드보이=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장에 투입된 러시아 징집병들이 군복, 의약품 등 전투용품을 자비로 사야 한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 하루아침에 전쟁터로 끌려간 이들은 "훈련을 받기는커녕 무기조차 지급받지 못했다"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모든 책임을 국방부로 돌리고 있다.

"내 돈으로 군복 사면 비용 지원되나" 묻자 "안 돼"

지난 5일 러시아 정부의 질의응답 사이트에 올라온 글. 러시아어로 "본인의 군복과 의약품을 사면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냐"는 질문이 적혀 있다. объясняем.рф 사이트 캡처

지난 5일 러시아 정부의 질의응답 사이트에 올라온 글. 러시아어로 "본인의 군복과 의약품을 사면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냐"는 질문이 적혀 있다. объясняем.рф 사이트 캡처

6일(현지시간)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에 따르면 전날 러시아 정부의 질의응답 사이트에 "징집병이 본인의 군복과 의약품을 직접 사면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냐"는 질문이 올라왔다. 사이트 운영자는 "임무 수행에 필요한 물품은 지급하지만, 병사가 원해서 추가로 장비나 의약품을 사면 (정부가) 보상할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메두자는 "직접 필수품을 사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해석했다. "필요한 물품을 준다"고 했지만, 러시아 정부가 군복 같은 최소한의 물품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러시아 성향 텔레그램 계정이 6일 게시한 영상에는 수백 명의 러시아 군인들이 맨몸으로 벨고로드 지역의 기차역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 담겼다. 이들은 "우리는 소떼처럼 취급받고 있다"며 "훈련은 하나도 없고 사비로 음식을 사 먹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외에도 스스로를 징집병으로 밝힌 군인들이 "우리는 불법적으로 동원됐다",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버려졌다"고 하소연하는 영상들이 SNS에 올라왔다.

러시아 국회의원들도 "군수 물자가 부족해진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물자 부족을 사실상 인정했다. 하원(두마) 국방위원회 위원장인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포는 러시아 국영TV 채널에 출연해 "후방 지원을 위한 예산 지급이 지난해 완료됐는데, 물자는 다 어디로 사라졌느냐"며 다른 국방위 소속 의원과 조사 촉구 서한을 검찰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에 쫓기는 러군, 무기 놔두고 도망

지난 3일 우크라이나 이지움과 하르키우를 잇는 도로에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잔해가 버려져 있다. 이지움=AP 뉴시스

지난 3일 우크라이나 이지움과 하르키우를 잇는 도로에 파괴된 러시아군 전차 잔해가 버려져 있다. 이지움=AP 뉴시스

가뜩이나 무기가 부족한 러시아군은 남은 중화기마저 우크라이나에 뺏기고 있다. 하루 만에 40km를 이동할 정도로 빠르게 진격하는 우크라이나군을 피해 퇴각하느라 무기를 모두 챙길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이 두고 간 무기로 전력을 쏠쏠하게 보충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집계에 따르면 탱크와 보병전투차, 다중로켓 발사기 등은 우크라이나가 자체 조달한 것보다 러시아로부터 뺏은 양이 더 많다. 특히 두 나라의 무기 체계가 비슷해 적응 훈련 없이도 금방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WSJ는 "지난 4월 러시아군이 북부에서 퇴각하며 두고 간 무기까지 합치면 러시아는 서방 동맹보다도 우크라이나에 많은 무기를 지원한 셈"이라고 짚었다.

쇼이구 국방장관 겨냥…"나였으면 총으로 자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해 8월 15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모스크바 인근 쿠빈카에서 열린 방산전시회인 '육군 2022 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해 8월 15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함께 모스크바 인근 쿠빈카에서 열린 방산전시회인 '육군 2022 포럼'에 참석하고 있다. 모스크바=EPA 연합뉴스

러시아인들이 동원령을 피해 해외로 달아나는 행렬도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인 2명이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사실도 밝혀졌다. 리사 머카우스키 알래스카주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들은 징집을 피하려고 러시아 동부 해안 지역에서 배를 타고 도망쳐 알래스카 갬벨 인근 해변에 도착한 것으로 보고됐다"고 전했다. 지난달 21일 예비군 동원령이 발표된 후 약 20만 명이 해외 도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든 비난의 화살은 러시아 국방부로 향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임명한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州) 행정부 수장인 키릴 스테르무소프는 텔레그램에 영상을 올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맹비난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국방장관이었다면 스스로 총을 쐈을 것'이라고 한다"며 "국방부에는 부패한 약탈자들과 잉여 인간들이 모여 있다"고 했다.


장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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