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단독

빠르게 동·남부 동시 진격… 우크라 '양동작전'에 허 찔린 러시아

입력
2022.10.05 23:00
17면
구독

동부 요충지 리만 탈환 이틀 만에 헤르손 대거 수복
동부·남부 양동 전술 구사… "빠르고 강한 진군" 주효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4일 헤르손주 비소코필리야 마을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걸고 있다. 키릴로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차장 트위터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4일 헤르손주 비소코필리야 마을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걸고 있다. 키릴로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차장 트위터

우크라이나가 북동부 하르키우와 동부 도네츠크에 이어서 남부 헤르손에서도 연일 승전고를 울리고 있다. 하루 만에 40㎞를 진군할 정도로 기세등등하다. 동부 전선에서 공세 수위를 높여 러시아군의 관심을 유인하는 동시에 남부 전선에서 ‘빠르고 강력하게’ 타격하는 ‘양동 전술’을 펼친 결과다.

동부 승리 이틀 만에 헤르손 마을 수십 곳 탈환

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주(州)를 관통하는 드니프로강 서안을 따라 진격하면서 러시아에 빼앗겼던 소도시와 마을을 대거 탈환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연설에서 “우리 군은 남부에서 꽤 빠르고 강력하게 진군하고 있다”며 “이번 주에만 마을 수십 곳을 해방했다”고 밝혔다. 또 헤르손주 마을 류비미우카, 흐레슈체니우카, 졸로타 발카, 빌랴이우카, 우크라인카 등 몇 곳을 나열하면서 “(보안상) 언급하지 않은 해방지는 더 많다”고 강조했다. 예우헨 예닌 우크라이나 내무차관은 되찾은 마을이 50곳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는 공개된 정보 이상으로 더 많은 지역을 수복한 것으로 보인다. 헤르손 지역 친(親)러시아 행정 당국자는 “우크라이나군이 두드차니 마을을 점령하고 있다”고 했고, 러시아 국방부 대변인도 “러시아군이 졸로타 발카에서 더 남쪽으로 후퇴했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현지 러시아 관리는 우크라이나가 공식적으로 거론하지 않은 곳까지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으로 인정했다”며 “만약 사실이라면 우크라이나군이 하루에 40㎞를 전진했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빠르고 강한 공격, 쉬운 목표물 공략… 우크라 전술 승리

4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리만 인근 도로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장갑차에 국기를 꽂고 있다. 리만=AFP 연합뉴스

4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리만 인근 도로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장갑차에 국기를 꽂고 있다. 리만=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승리는 탁월한 군사 전략이 뒷받침됐다. 지난달 초 하르키우주 탈환 당시 우크라이나군은 ‘헤르손주를 수복하겠다’는 역정보를 흘려 동부 러시아군 병력을 남부로 유인한 뒤 하르키우주를 기습하는 ‘성동격서’ 전술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그 기세를 몰아 이달 1일 도네츠크주 요충지 리만에 입성할 때만 해도 인근 루한스크주로 더 동진하려는 듯했다. 그러나 불과 48시간 만에 새로운 승전 소식이 들려온 곳은 뜻밖에도 남쪽으로 600㎞나 떨어진 헤르손이었다. 양쪽 전선에서 동시에 작전을 전개했다는 뜻이다.

NYT는 “우크라이나군은 한 번에 여러 곳을 공격하는 전술로 적을 무너뜨리고 후퇴시켰다”며 “러시아 점령지로 더 깊이 들어가 군사 작전을 확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디언도 “남부 및 동부 우크라이나군 지휘관들은 러시아의 대응 속도보다 더 빠르게 러시아군 지휘 계통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평했다.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빠르고 강력한 진군”이라는 말로 암시했듯 핵심은 ‘속도전’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군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은 밤 사이 압도적인 병력을 빠르게 이동시켜 길게 뻗은 전선에 드문드문 자리한 러시아군 개별 편대를 공격했다”고 설명했다. 서방 외교관도 “동부 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은 주도권을 잡기 위해 비교적 쉬운 목표물을 골라서 타격하는 작전을 전개해 왔다”고 평가했다.

본격적인 영토 수복 작전에 앞서 러시아군의 보급망을 끊는 전략도 주효했다. 세르히 쿠잔 우크라이나 안보협력센터 소장은 “우크라이나가 수개월간 러시아군 사령부, 무기 은닉처, 물자 공급망을 집중 공격한 결과 러시아군은 양쪽 전선에서 모두 소진됐다”며 “우크라이나가 통신망과 보급선을 파괴했기 때문에 러시아군은 조직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헤르손에서 계속 전과를 올릴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전면 철수를 승인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헤르손에 남은 러시아군 병력 2만여 명이 드니프로강으로 배수진을 치고 반격에 나선다면 전세가 복잡하게 흘러갈 수도 있다. 또 다른 미군 관계자는 “북동부에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 방어선을 마치 구멍이 숭숭 난 스위스 치즈처럼 뚫고 진격했지만 남부에서는 상황이 다르다”며 “전투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FT에 말했다.

김표향 기자

댓글 0

0 / 250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 저장이 취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