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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vs '북한군'…남북이 우크라이나에서 맞붙는다면[문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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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맞붙는 시나리오가 외신을 중심으로 심상치 않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장소가 특이합니다. 세계에서 군대와 살상무기가 가장 밀집한 휴전선도, 이미 남북이 수차례 격돌한 서북도서와 주변 해역도 아닙니다.
뜬금없게도 한반도에서 7,000여㎞ 떨어진 동유럽 우크라이나입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신음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남북이 우회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국가들과 함께 우크라이나를 지원합니다. 반면 북한은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에 양측의 요청으로 남북이 각각 무기와 병력을 보낸다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격입니다.
논란의 발단은 체코 언론매체의 보도입니다. 국내 방산업체 LIG 넥스원의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신궁'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국산 무기를 수출하는 'K-방산' 붐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무기입니다.
체코 일간 MF DNES는 지난달 29일 “미국이 체코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한국산 무기 30억 달러 규모를 지원한다”고 전했습니다. 미국이 돈을 대고, 체코 방산업체가 신궁을 수입해 이를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우회지원 방식입니다.
또 다른 체코 매체 IDNES는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을 인용해 “대공 방어를 위한 특정 유형의 로켓 발사기”라고 한국산 무기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LIG 넥스원의 신궁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며 신궁의 이름을 콕 집어 지목했습니다.
한국산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공급할 수 있다는 관측은 각국 매체에서 동시다발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특히 무기를 받는 수혜국이 될 우크라이나의 매체들이 체코발 뉴스를 앞다퉈 받아 쓰면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모습입니다. 일본 지지통신도 1일 미국 워싱턴발 보도를 통해 '30억 달러 상당 한국산 무기 우크라이나 공여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의 지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만 살상무기를 보내지는 않겠다"고 천명한 상황입니다. 지지통신은 “한국은 러시아의 침공 개시 이후 우크라이나에 방탄 조끼 등을 지원하는데 그쳤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긴급 의료품과 식품 등 약 4,000만 달러 규모의 물품을 지원해왔습니다. 국방부 역시 방탄헬멧 등 군수물자를 우크라이나에 보낸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의 요구는 집요했습니다. 실제 지난 4월 8일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과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간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측은 대공유도무기체계 지원을 요청했으나 서 전 장관은 한국 정부의 살상무기 지원 불가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국방부는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 당국자는 “우크라이나 측이 요구한 무기는 휴대용 대공유도무기체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갑자기 ‘신궁’이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6월 드미트로 세닉 우크라이나 외무차관에 이어 7월 우크라이나 의회 대표단까지 한국을 찾아 러시아에 맞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북한이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발 걸쳤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5일 미 정보당국자를 인용해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로켓과 포탄 수백만 발을 구매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 대사는 이를 “가짜뉴스”라고 즉각 부인했지만, 베단트 파텔 미국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이틀 뒤 브리핑에서 “향후 러시아가 추가로 북한 군사무기 구매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무기뿐만이 아닙니다. 북한 인력이 러시아 지원에 투입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러시아 군사 전문가인 이고르 코르첸코는 지난 8월 초 러시아 국영 ‘채널1’에 “북한 의용군 10만 명이 이 전쟁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보고가 있다”고 말했다고 미국 뉴욕포스트 등이 보도했습니다.
이반 네차예프 러시아 외무부 정보언론국 부국장은 보도 직후 “관련 보도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이라고 책임지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서 “그러한 협상은 진행된 바 없다”고 일축했지만, 북한이 마음만 먹으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지원할 방법은 얼마든지 남아있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 이른바 ‘돈바스’ 지역 재건 사업에 북한 노무자를 파견받을 수 있다는 의지도 밝혔습니다. 지난 7월 러시아 이즈베스티야통신에 따르면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북한 러시아 대사는 “북한 노동자들이 분리독립을 선언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인프라 건설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마체고라 대사는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질이 높고 열심히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사회 인프라와 산업 시설을 재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며 북한 노동자 ‘수입’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북한 노동자 해외 파견은 201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결의 2397호에 따라 금지됐습니다. 하지만 표트르 일리체프 러시아 외무부 국제기구국장은 지난 8월 18일 유엔 대북제재가 돈바스 지역의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발을 일축했습니다.
이처럼 남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복판으로 조금씩 끌려가는 모양새입니다. 전황이 격화되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 같은 관측은 더 힘을 얻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 정부는 펄쩍 뛰었습니다. 국방부는 30억 달러 규모 우크라이나 우회 지원에 대해서도 3일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습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방침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국산 무기에 관심이 큰 체코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핑계 삼아 한국산 무기 도입에 대한 국민여론의 호응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번 해프닝의 단초가 된 체코 매체의 보도에 무언가 의도가 깔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북한도 손사래를 치긴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2일 “우리는 이전에도 러시아에 무기나 탄약을 수출한 적이 없으며, 그럴 계획도 없다”는 북한 국방성의 입장을 전했습니다. 이어 "미국을 비롯한 적대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ㆍ군사적 목표 추구를 위해 소문을 퍼트리고 있다"고 되레 역공을 폈습니다.
남북한의 공식 입장은 완강해 보입니다. 우크라이나와 최대한 선을 긋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국제정치는 '냉혹한 생물'입니다. 상황이 변하면 이해관계가 바뀌고 각국의 셈법도 그에 맞춰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단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특히 최근 우크라이나가 대규모 공세를 펼치면서 러시아군을 몰아내고 있는 만큼 전쟁 이후 '역할'을 주장하려는 각국이 전략적인 판단을 앞세워 주판알을 굴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과정에서 큰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우회 지원이 효과적이라는 제언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물밑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의 경우 유엔과 서방의 제재로 궁지에 몰린 상태입니다. 섣부른 침공으로 사방에 적을 만든 러시아가 매력적인 동아줄로 보일지도 모릅니다. 대부분 국가들이 외면하는 러시아의 손을 잡는 대신 그 대가로 북한이 숨통을 틔우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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