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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타페 디젤’의 추억

입력
2022.09.30 18:00
수정
2022.09.30 20:1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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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원전 ‘친환경’ 지정을 보며
경유차가 ‘클린’ 대우받던 때 떠올라
EU 기준 타령 말고, 우리 현실 직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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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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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싼타페 디젤 모델이 내년 말 퇴역할 것이라는 기사를 보는 순간, 6년 전 헤어진 ‘누렁이’가 떠올랐다. 누렁이는 10년 넘게 우리 가족과 함께했던 1세대 싼타페 디젤 모델로, 갈대색 외관 때문에 누렁이라 불렀다. 싼타페 디젤은 연비가 높아 경제적이었을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발생량이 휘발유 엔진보다 적어 ‘친환경’이란 명예도 얻었다. 2009년 정부가 ‘클린 디젤’이란 과분한 호칭과 함께 각종 혜택을 주면서 싼타페를 비롯한 디젤차가 대중화됐다. 2018년 환경부가 입장을 바꿔 미세먼지를 내뿜는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하기 전까지 디젤차는 정부 공인 ‘클린 친환경’ 차였다.

지난 9월 20일 환경부가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개정안을 공개하며 원자력발전을 친환경으로 분류했다. 원전은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다는 점에서 디젤처럼 친환경적이다. 하지만 디젤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다.

우선 폐기물 처리다. 원전 사용 폐연료봉은 10만 년간 밀봉 보관하는 것 외에는 처리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쌓인 폐연료봉이 50만 개가 넘고 매년 1만 개 이상 늘어나고 있지만, 모두 원전 내 수조에 임시 보관 중이다. 이마저도 2031년 한계에 도달한다. 해결책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방폐장) 건설인데, 부지 선정 후에도 37년가량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미 한참 늦었다. 급기야 고리원전 옆에 임시보관시설을 지으려 하지만, 지역 주민 반대로 진행이 불투명하다. 조리기구가 친환경 제품이더라도 하수시설이 없다면, 그 집을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을까. 환경부도 이런 점을 의식해 원전을 K택소노미에 포함하는 전제조건으로 방폐장 건설을 제시했다. 하지만 계획만 세우면 된다. 핵폐기물 처리를 미래 세대에 미루려는 속셈이 아닐 수 없다.

둘째, 안전이다. 환경부 클린 원전 안전기준에는 핵연료봉 안전성 강화를 위한 ‘사고저항성 핵연료’ 등 미완성 기술이 다수 담겨 있다. 안전 책임마저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것이다.

고압 송전탑 인근 주민 안전과 불안 해소도 난제다. ‘밀양 송전탑 사태’를 떠올려 보라. 신고리 원전 3호기 전력을 전달할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2008년부터 7년간 줄기차게 저항했다. 현재 원전 시스템은 인구가 적은 바닷가에 건설하고, 그 혜택은 먼 곳의 대도시나 산업 시설이 대부분 가져간다. 이런 부조리를 해결하지 않은 채 신규 원전을 건설한다면 건설지 주변은 물론 고압 송전선이 지나가는 모든 마을에서 갈등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환경부는 해결책으로 소형모듈원자로(SMR)에 기대를 건다. SMR는 노심 손상 같은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으며, 입지 선택도 자유롭다. 하지만 SMR 기술이 완성돼도, 원전 불안감은 여전히 남는다. 친원전 정치인 중 “SMR가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니, 우리 지역에 짓겠다”고 주장할 인물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현 정부가 원전을 친환경으로 분류한 논거는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디젤을 친환경으로 포함할 때와 같다. 유럽연합(EU)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EU는 배출가스 기준 강화를 전제로 디젤차를 친환경으로 분류했다. 여기에는 유럽의 앞선 배기가스 저감 기술을 내세워 외국 차 수입을 줄이려는 속셈도 있었다. 하지만 높아진 배출가스 기준을 맞추지 못한 독일 차 회사들의 배출가스 조작이 드러나며 파국으로 막을 내렸다.

선진국 벤치마킹은 과거 성장의 비결이었다. 하지만 제도 도입 맥락과 환경의 차이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성공한다. 껍데기만 베끼고서 “선진국도 그렇게 한다”고 강변하는 구태는 더 이상 통하기 힘들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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