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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남자 푸틴, '우크라이나 땅 강제 병합'의 다음 착점은?

입력
2022.09.29 00: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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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편입' 대신 협상에 활용 → 종전 시도
러 정부 인사들, '외교 협상' 발언 늘어
②점령지 편입 공식화 → 추가 도발·확전
핵 위협·무차별 공격 등으로 반격 가능성

러시아 정부가 임명한 콘스탄틴 이바셴코 마리우폴 시장이 25일 군인들과 함께 지역 투표소를 찾은 모습. 마리우폴=EPA 연합뉴스

러시아 정부가 임명한 콘스탄틴 이바셴코 마리우폴 시장이 25일 군인들과 함께 지역 투표소를 찾은 모습. 마리우폴=EPA 연합뉴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4개 주(州)를 러시아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야욕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러시아는 27일(현지시간) "주민투표에서 영토 병합 안건이 가결됐다"고 발표했다. 결과를 정해두고 실시한 부정 투표였다.

전쟁은 중대 기로를 맞았다. 주민투표 결과를 러시아가 어떻게 활용할지가 관건이다. 전황 악화와 예비군 동원령 역풍 등으로 궁지에 몰린 푸틴 대통령이 ①종전으로 향하는 협상용 카드로 쓸지 ②확전을 위한 불쏘시개로 쓸지를 두고 관측이 엇갈린다.

부담 커진 푸틴…"협상 카드로 남길 수도"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 협상단과 러시아 대표 협상단이 3월 3일 벨라루스 브레스트 지역에서 평화협상을 하고 있다. 브레스트=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 협상단과 러시아 대표 협상단이 3월 3일 벨라루스 브레스트 지역에서 평화협상을 하고 있다. 브레스트=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타스통신은 우크라이나 4개 주(도네츠크·루한스크·자포리자·헤르손)의 러시아 영토 편입 찬반 투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가결됐다고 보도했다. 무장한 군인들이 집집마다 돌며 찬성을 강요하고, 무기명투표 원칙이 무시된 '사기 투표'였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투표 결과의 효력 없음을 선언했지만, 러시아가 귀담아 들을 리는 없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영토를 훔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도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아나톨 리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전쟁학 교수는 영국 가디언 기고에서 "러시아의 동원령보다 영토 병합 투표 결과가 지금 나온 것이 훨씬 위험하다"고 분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선택이 전쟁 판 자체를 흔들 수 있다는 뜻이다.

종전을 원한다면, 점령지 편입 발표를 미룬 채 평화협상을 위한 카드로 남겨둘 가능성이 크다. 2014년 도네츠크·루한스크인민공화국이 러시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포했을 때 푸틴 대통령은 두 지역의 영토 편입을 강행하는 대신 우크라이나와 '민스크 협정'을 맺어 휴전했다.

종전을 일절 배제하고 있다고 보긴 어려운 게 요즘 푸틴 대통령의 처지다. 지난 21일 예비군 동원령을 선포한 뒤 러시아인의 해외 도피, 반정부 시위, 폭력 사태가 잇따르는 데다 튀르키예(터키), 인도, 중국 등 우방들에 외면받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하르키우에서 대패한 최근 선례가 반복되면 푸틴이 축출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정부 인사들의 최근 발언에서도 평화 협상에 대한 체제 내부의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1일 "3월 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상호 합의에 가까워졌을 때 미국과 영국이 추가 대화를 막았다"며 "이후로도 우크라이나가 협상을 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전쟁 장기화의 책임을 우크라이나에 돌리기 위한 발언일 수 있다.

이판사판 '합병 공식화' 후 확전 명분 삼을 수도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주 피우데노우크라인스크 원자력발전소 폐쇄회로(CC)TV 영상에 19일 오전 0시 30분쯤 인근 지역에 가해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인한 섬광이 나타나 있다. 전세가 불리해진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기반시설을 무차별 폭격하고 있다. 유즈누크라인스크=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남부 미콜라이우주 피우데노우크라인스크 원자력발전소 폐쇄회로(CC)TV 영상에 19일 오전 0시 30분쯤 인근 지역에 가해진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인한 섬광이 나타나 있다. 전세가 불리해진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기반시설을 무차별 폭격하고 있다. 유즈누크라인스크=로이터 연합뉴스

'위험한 돌출 행동'으로 이름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점령지를 지렛대 삼아 확전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점령지의 영토 편입을 공식화한 뒤 점령지에 대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을 '러시아 영토 침공에 따른 전술핵 반격 등의 명분'으로 삼는다는 시나리오다.

영국 국방부는 "푸틴이 30일 러시아 상·하원 연설에서 점령지의 러시아 연방 가입을 공식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푸틴 대통령은 21일 대국민연설에서 "영토 통합성이 위협받으면 모든 수단을 쓸 것"이라고 말했고, 이는 핵무기 사용 협박으로 해석됐다. 실제 미국은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보 수집 활동을 강화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이 실제 핵 버튼을 누르는 초대형 리스크를 감수할지는 미지수다. 이에 우크라이나 기반시설 무차별 공격 등으로 시간을 벌 가능성이 거론된다. 러시아군이 동북부 전선에서 밀리기 시작한 이달 초부터 기반시설은 주요 타깃이 됐다. 27일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천연가스관 '노르트스트림1·2'에서 세 차례 가스가 누출된 것도 러시아의 테러 때문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WP는 유럽 각국 관료들을 인용해 "제재에 대한 보복이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보내는 경고일 수 있다"고 전했다.

장수현 기자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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