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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갱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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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더워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봄이 무르익을 때라 덥다고 느끼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서늘해졌다.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더워졌다.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서늘해졌다. 그러길 몇 번… 이상했다. 내가 더워진 것이었다. 그렇게 어느 날 내게 갱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갱년기는 열감을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불면, 우울, 근육통 등과 함께 왔다. 사실 박사논문을 한창 쓸 때부터 불안, 우울, 근육통 등을 느꼈는데, 힘들 때라 그러한 증상들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갱년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도 내가 한 일은 석류 음료를 열심히 마시는 것뿐이었다. 갑상샘암 수술을 한 전력이 있어서 여성 호르몬 치료가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뒤로 심각해진 불면증은 내 몸의 컨디션을 최악으로 내몰았다.
당시 코로나19로 비대면 강의가 일제히 시작되던 때였는데, 생전 해보지 않았던 동영상 강의를 만들고 온라인 비대면 강의를 하느라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다. 문제는 목 상태였다. 잠을 줄여가면서 동영상 강의를 만들었는데 역류성 식도염이 악화된 것이다. 약을 먹어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수면시간은 4시간 미만이었다. 몸의 컨디션은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나빠졌고 급기야 나는 의사에게 수면제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의사는 2주간의 약을 처방해주었고 나는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약이 떨어지니 다시 잠을 청하는 게 어려워졌다. 의사에게 수면제를 다시 처방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내과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2주 이상 처방할 수 없다고 하였다. 알고 보니 수면제가 아닌 신경안정제를 처방했던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갱년기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있다. 갱년기 증상을 견디며 사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럽다.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강의 시간에 목 뒤로 흥건하게 맺히는 땀을 남몰래 닦아내는 것도 속이 상할 때가 있다. 여성 갱년기에 대해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나는 그 원망을 내게 하기로 했다. 나조차도 나의 갱년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 안의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작동한 것이다.
얼마 전 서울지하철 신당역 역무원이 살해되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스토킹 처벌법을 손보겠다고 입을 모았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벌어진 지 6년 만이다. 그때도 정치권에서는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서 법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익히 알고 있겠지만 신당역 사건이나 강남역 사건은 '여성혐오'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여성혐오는 가부장 이데올로기와 떼어 놓고 말할 수 없다.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었던 전통사회에서 여성은 아들을 생산하기 위한 도구였고 소위 남존여비는 그러한 관념 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여성혐오는 남존여비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개탄스러운 신당역 살인사건을 접하면서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지만 막연했다. 그러다 내 안에서 작동하는 가부장 이데올로기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래서 내 안에 자리한 가부장 이데올로기부터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 나는 대놓고 나의 갱년기를 말하려고 한다. 스스로를 세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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