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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환도 조주빈도 이영학도 쓴 '반성문'...대필 업체도 성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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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대전지법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A씨는 그해 8월 한 대형매장에서 10대 여학생 2명을 추행하고 또 다른 10대 1명을 화장실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그는 기소 후 75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했고, 판사는 "대낮에 공개된 장소에서 강간과 추행을 한 죄책이 매우 무겁다"면서도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해당 재판을 담당한 판사 탄핵 청원이 올라왔다.
#만취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하고 이를 불법 촬영·유포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던 가수 정준영이 2020년 5월 항소심에서 1년 감형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은 "합의를 위해 노력했지만, 현재까지 합의서가 제출되지 않았다"면서도 "피고인이 공소사실 자체는 부인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그 당시 상황에 대해 진술한 점, 사실적인 측면에서의 본인 행위는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는 취지의 자료를 낸 점 등을 고려했다"며 감형 이유를 밝혀 사회적 공분을 샀다. 정씨는 선고 전까지 4통의 반성문을 제출했고, 그해 9월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살인 사건의 피의자 전주환이 피해자를 살해한 당일, 재판부에 수십 장의 반성문을 제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범죄자들의 '반성문 감형'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반성문이 피의자 감형 요소 중 하나인 '진지한 반성'의 단골 입증자료로 쓰이면서, 솜방망이 처벌의 구실을 만들어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지난 16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신당역 살인은)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피고인에게 얼마나 인권 보호적인지를 시사하는 여러 가지 포인트를 다 담고 있다"며 전씨의 범행 직전 반성문 제출을 예로 들었다. "경찰도 법원도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불구속 상태에서 정당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행사하게 했고, 판결 전날 반성문까지 다 받아줬다"는 설명이다.
법관이 양형에 참고하는 양형위원회는 성범죄 양형기준에서 특별 양형 인자로 '처벌불원'을, 일반 양형 인자로 '진지한 반성'을 감경요소로 둔다. 대법원이 제시하는 '양형 기준표'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지만, 관행적으로 법관들은 양형 기준표에 나타나는 감형 요소들을 참고해 판결을 내려왔다. 이 때문에 일단 성범죄로 기소되면, 대부분 피고는 '진지한 반성'을 입증하기 위한 요소로 반성문 제출과 피해자 지원단체에 꼼수 기부, 가족을 동원한 호소 등을 이어간다. 전주환 역시 한 번에 수십 장씩, 수차례에 걸쳐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이 교수의 인터뷰를 살펴보자. '낮에는 사과와 사죄와 반성의 글이 가득한 반성문을 내고 밤에는 살인을 하는 전주환의 이 심리는 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는 "그것(심리적 요인)보다 우리나라 사법제도가 피고인에게 모든 기회 다 준다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성범죄자들의 반성문이 '반성의 진정성'을 글로 담는다기보다, 감형을 위한 꼼수로 활용됐는데 전주환도 이런 점을 감안했다는 말이다.
실제 성범죄 사건에서는 '반성 감형'이 많다.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6~2019년 신고된 성범죄 사건 중 양형 기준 적용으로 집행유예가 나온 사례의 63.8%가 '진지한 반성'을 적용했다. 성매매 알선 등 혐의로 재판받고 있는 빅뱅 출신 가수 승리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이유로 2심에서 형량이 절반으로 줄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재판 과정에서 43차례 반성문을 제출했고 결국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문제는 '진지한 반성'을 객관적으로 알기 어렵고, 재판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일례로 이영학은 1심에서 16차례, 2심에서 26차례 반성문을 냈는데, 1심 재판부가 이영학의 반성문을 "조금이라도 가벼운 벌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위선적인 것"이라고 평가절하한 반면 2심 재판부는 "반성문 말고는 교화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가 마땅치 않다"며 반성문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만은 없다고 봤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올해 초 한국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반성이 (범죄) 위험성의 척도가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진지함이라는 주관적 평가와 반성이라는 내면적 감정의 작용을 본인이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면 이는 과감히 법관의 판단영역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반성문을 대신 써주는 대필 시장도 성행하고 있다. 23일 현재, 한 포털사이트에는 대필 업체 홈페이지 광고만 30여 개가 뜨는데, 업체들은 사건 내용의 골자만 적어 보내면 '수려한 문장'으로 반성문을 대신 써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대필 업체가 성행하다보니, 의뢰비도 싸다. 업체들이 제시하는 반성문 가격은 대략 건당 5만 원 선이다.
성범죄 관련 재판에서 "반성문이 기본값"(배수진 변호사)이 되다 보니, 이 호소가 매번 통하는 건 아니다. N번방 사건의 주범인 조주빈은 지난 2020년 5월부터 10월까지 반성문 100여 통을 재판부에 제출하고 42년형을 받았다. 공범인 강모씨는 재판부로부터 "이런 반성문은 안 내는 게 낫겠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강씨의 반성문에는 '나는 고통받으면 그만이지만 범죄와 무관한 내 가족과 지인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는데, 판사는 "본인이 자꾸 억울하다는 입장을 취하는데, 피해자를 생각하면 너무 안 좋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신당역 사건의 피해자 유족 측 법률대리를 맡은 민고은 변호사도 지난 20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주환의 반성문을 "피고인의 변명으로 가득했다"며 "피해자분께 반성문을 열람 복사해 전달했는데, 피해자께서도 느낀 것은 (피고인이)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고 질타했다.
반성문 대필 업체들은 이런 반응들을 역이용하고 있다. 한 대필업체는 홈페이지에 세간의 비판을 받은 성범죄자들의 반성문 사례를 쭉 열거하며 '그렇기 때문에 법원에 제출하는 반성문은 전문가가 써야 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성문 감형을 근절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1월 열린 '젠더폭력 범죄와 양형' 토론회에 참석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는 "진지한 반성 여부가 감경요인으로 자주 고려된다는 점을 악용한 반성문 대필 사이트 등이 성행해 재판부에 제출하는 반성문을 사고파는 부작용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라며 "반성 여부의 판단기준이 명확히 제시돼야 할 것이며, 그 기준점은 합리적이고 '피해자 중심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에선 '반성문 감형 꼼수 근절법'이 발의된 상태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법관이 양형을 참작할 때 피해자 의견 진술을 듣도록 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도 지난 3월 제115차 회의에서 '진지한 반성'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하기 위해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등을 따져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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