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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복지냐, 약자복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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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복지철학으로 연일 ‘약자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고용을 통한 성장과 선순환하는 지속가능한 복지’(대통령직 인수위),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나라’(110대 국정과제) 같은 추상적 구호는 있었지만 일관된 논리로 새 정부의 복지철학을 설명한 일은 없었다.
실마리는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껍게 지원’하겠다는 발언이다. 이어 윤 대통령은 발달장애인, 독거노인, 자립준비청년 등을 찾았고 사회복지 학자인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아예 지난주 기자설명회를 자청했다. 그는 다문화가족, 장애인처럼 전통적인 취약계층에 더해서 청년, 노인처럼 생애주기에서 소득이 낮은 이들을 약자로 규정한 뒤 집중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건전재정을 중시하는 보수정부이기에 복지 대상을 좁히겠다는 의도가 이해는 간다.
약자복지 강조로 그쳤으면 좋았겠지만 문제는 안 수석의 부연설명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특히 약자복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임 정부들이 ‘정치복지’를 했다고 한 건 지나쳤다. 그는 “득표에 유리한 포퓰리즘적 복지사업이 눈에 띈다”고 했다. 새 정부의 인사들이 문재인 정부의 방역정책을 공격하기 위해 ‘정치방역’이라는 용어를 남발한 일이 연상된다. 특정 정책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중산층까지 수혜를 보는 현금성 복지를 겨냥한 비판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런 진단이 올바른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진단이 제대로 돼야 바른 해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가령 수혜대상이 넓어 표로 직결되는 정책이라면 기초연금, 아동수당,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같은 정책이 떠오른다. 속도의 차이는 있었다고 해도 지난 20년간 진보와 보수정권 가리지 않고 추진했던 정책이다. 이를 ‘정치복지’로 규정하는 건 자유지만 그 효과마저 부정하는 게 옳을까. 윤석열 정부 역시 소득과 상관없이 신생아 가정에 지급하는 부모급여(0세 아동 가구에 월 최대 70만 원)를 신설하지 않았나.
세금을 내는 중산층이 복지 혜택을 체감해야 복지국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는 건 사회복지 역사에서도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현금성 급여 총예산에서 각 소득분위가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해보니 현금성 복지가 확대된 지난 정부에서 중산층의 현금성 급여 비중도 늘었지만 저소득층(소득1분위)의 현금성 급여 비중도 함께 늘었다는 분석도 있다(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중산층 복지와 저소득층 복지가 제로섬 게임처럼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많은 복지전문가들도 “기본소득제도라도 시행했으면 모를까 한국 복지를 정치복지로 부르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다.
안 수석은 복지누수를 막기 위해 이번 정부에서 각종 복지제도의 통폐합을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복지혜택이 줄어들 약자들에 대한 고민이 빠진 건 크게 아쉽다. 약자들이 여기저기서 (복지 혜택을) 중복으로 받는 행위를 ‘복지쇼핑’이라는 개념까지 끌어들여 설명한 일은 실망스럽다. 복지시스템을 공격적으로 축소했던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복지의 여왕(welfare queen: 가명으로 정부 혜택을 받아 캐딜락을 몰고 다닌다는 가공의 여성)’이라는 선동적 프레임을 사용했던 건 그래도 40년도 더 된 옛날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개도국에 대한 한국의 책임 있는 역할을 강조하는 유엔총회 연설을 한 20일 대통령실 관계자가 이를 “약자복지의 글로벌 버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정치복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약자복지를 정권의 브랜드로 확보하려는 조급함이 엿보인다. 이 칼럼을 5년 뒤 돌아보며 ‘말꼬리 잡기’였다고 후회해도 좋다. 새 정부는 말보다는 예산으로 약자복지의 철학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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