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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 살인사건 두고 불거진 '여성혐오 범죄' 논란

입력
2022.09.20 08:36
수정
2022.09.2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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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여성혐오 규정, 스토킹 해결에 도움 안 돼"
정춘숙 민주당 의원 "여가부 강화 필요"
신당역 사건, 유엔서 규정한 '젠더 범죄'에 해당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 피의자인 전주환(가운데)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로 호송돼 유치장으로 들어서는 모습. 뉴시스

신당역 역무원 스토킹 살인 사건 피의자인 전주환(가운데)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경찰서로 호송돼 유치장으로 들어서는 모습. 뉴시스

전주환(31)이 피해자를 스토킹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중 피해자를 살해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성격 규정을 놓고 공방이 오가고 있다.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여성혐오 범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밝힌 이후 비판이 제기되자 생긴 논쟁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19일 KBS 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해 스토킹 범죄를 여성 대상의 범죄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는 "스토커 중에는 여성도 있다"면서 "그러면 남성들은 모두 위험한 사람들이냐"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의 지적 취지는 '여성혐오 범죄'라는 정의가 스토킹 범죄를 막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레이블링(분류)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스토킹 범죄를 여성혐오 범죄라고 정의를 하고 문을 닫아서는 해결이 안 된다"면서 "정치 쟁점화를 하지 말고 대책을 찾아야 되는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같은 방송사가 제작한 '용감한 라이브'에서도 "여성이라서 죽었다고 말하면 대책과는 멀어진다"면서 "과거 PC방 살인 사건은 목숨 잃은 사람이 남자였고 스토커 중엔 여성도 있다. 스토킹 범죄를 여성혐오 범죄라고 싸잡아서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 각각의 범죄 양상이 다르고 정책도 달라져야 하는데 대책이란 게 나올까"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PC방 살인 사건'은 2018년 김성수(당시 29)가 PC방 아르바이트생과 말다툼을 한 뒤 피해자를 여러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다. 김성수는 징역 30년 판결을 받았다.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 흐리는 것"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이는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발언 등에 대한 더불어민주당과 여성단체의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된다. 이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캠프에 일시 합류했으며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YTN 라디오 '이재윤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김 장관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여성 혐오 범죄라고 하는 것이 여성을 자신과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고, 스토킹 범죄 피해자의 대부분이 또 여성인 점을 고려했을 때 여성 혐오 범죄"라고 말하면서 "굳이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자 하는 것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올바르게 접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충돌은 현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론'을 둘러싼 논쟁과도 직결된 측면이 있다. 정 의원은 같은 방송에서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스토킹 범죄가 굉장히 늘어나고 있고 'n번방' 등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 등 젠더 폭력이 너무 심각하다"면서 "여성 안전과 여성이 더 많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여성가족부의 역할과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사건의 젠더 폭력 규정에 부담 느끼는 듯"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며 회의실 앞 복도에 마련된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서 헌화 후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하며 회의실 앞 복도에 마련된 신당역 역무원 피살사건 피해자 추모 공간에서 헌화 후 인사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은 전주환이 피해자 불법 촬영 후 이를 빌미로 만남을 요구하고, 3년여에 걸쳐 지속적인 협박을 가했다는 점 등을 보면 '젠더 폭력'의 양상이 분명하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를 '여성 혐오'라는 표현으로 부르는 점에는 지속적으로 혼란이 있는데, 이는 미소지니(misogyny)의 번역어로서 '여성 혐오'에서 가리키는 '혐오'가 가부장적, 차별적 편견을 모두 포함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날 YTN의 같은 방송에 출연해 "혐오 범죄와 젠더 범죄를 구분해야 하는데, 혐오는 단순히 혐오감을 갖는 것이고, 젠더는 성의 불균형 때문에 일정한 불이익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면서 "유엔에서는 직장 내 성폭력, 스토킹, 가정폭력, 디지털 성범죄 등을 젠더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김현숙 여가부 장관 등의 반응에 대해 "젠더 폭력 규정은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 이슈가 개입돼 있다"면서 "'젠더 문제'라고 들어가는 순간 사회 구조적, 계층적 문제 때문에 범죄가 생긴다고 하면 좌파적 사고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 때문에, 지금 현 정부에서 여성가족부 장관 등이 이를 젠더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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