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 '아널드'를 앞서 배신한 이들

매국노 '아널드'를 앞서 배신한 이들

입력
2022.09.2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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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1 베네딕트 아널드

미국 '매국노'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독립전쟁의 영웅이자 배신자 베네딕트 아널드. battlefields.org

영국의 과도한 징세가 1773년 ‘보스턴차사건’을 낳았고, 그 불씨가 미국 독립전쟁(1775~83)으로 이어졌다는 명료한 설명은, 당시 250만 식민지인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정치 지향의 지나친 단순화이자 ‘승자의 역사’라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거기서 ‘승자’는, 거시적으로 보자면 오늘의 미국이겠지만, 당시 맥락에서는 ‘자유의 아이들(Sons of Liberty)’로 통칭되는 소수의 반영 급진파였다. 새뮤얼 애덤스를 주축으로 한 급진파는 영국과의 협상으로 식민지인의 권리를 신장하려 한 온건파에 맞서 혁명(전쟁)을 통한 완벽한 단절과 독립을 추구했다. 인디언으로 위장해 보스턴차사건을 일으킨 것도, 그럼으로써 식민지인의 반영 감정에 기름을 부은 것도 그들이었다.

독립전쟁 영웅이었다가 영국에 투항한 베네딕트 아널드(1741~1801)의 배신에도, 미 역사상 최악의 ‘매국노’라는 평판의 이면에도, ‘승자’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로드아일랜드 명문가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알코올 중독으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프렌치 인디언 전쟁과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소장까지 진급한 명장이었다. 1775년 펜실베이니아 전선에서 영국군의 진격을 저지함으로써 조지 워싱턴의 대륙군 본진의 퇴각과 재정비를 가능하게 했고, 결정적 승부처였던 새러토가 전투에서도 그의 전공은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과격한 성정에 독설가였던 그에겐 내부의 적이 많았다. 당시 그의 두 번째 아내가 ‘왕당파(영국 충성파)’ 가문 출신이라는 점도, 당시 헤게모니를 쥔 급진파 입장에서는 못마땅한 점이었다. 두 차례 부상까지 입으며 분전한 그는, 적어도 그의 입장에선 진급 등에서 불이익을 받았고 예산 유용 등 독직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 아내의 낭비벽 때문에 빚까지 졌던 그는 웨스트포인트 요새 사령관으로서 영국 측에 1만 파운드에 요새를 넘기려 했고, 그 음모가 발각된 뒤 영국 진영으로 피신해 대륙군과 싸웠고, 전후 영국서 사업가로 살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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