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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많았던 밤 9시...신당역 살인이 가능했던 '구조적' 이유는?

입력
2022.09.16 10:30
수정
2022.09.16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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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친고죄라 합의되면 무마...합의 종용하며 2차 가해
②경찰 보호조치 피해자 관리?가해자 관리로 바꿔야
③경찰 84% "구속 사유에 '피해자 위해 우려' 넣어야"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느냐."

신당역 역무원 사건 피해자 유족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발생한 역무원 살인사건의 피해자가 용의자로부터 3년간 스토킹 범죄에 시달린 것이 밝혀졌다. 피해자가 수백 차례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받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이번에도 희생을 막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범죄에 대한 우리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이런 참극이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16일 오전 고인을 추모하는 메시지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16일 오전 고인을 추모하는 메시지들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16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스토킹 범죄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재판 절차가 피고인에게 얼마나 인권 보호적인지를 시사하는 여러 가지 포인트를 다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건은 지난 14일 오후 9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발생했다. 서울교통공사 직원인 범인 A(31)씨는 여자화장실에서 흉기를 휘둘러 여성 역무원 B(28)씨를 살해했다. 경찰은 가해자를 체포, 이튿날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A씨는 입사동기였던 B씨를 불법 촬영한 뒤 영상 유포를 빌미로 만남을 요구하며 스토킹을 이어왔다. B씨가 지난해 10월 A씨를 경찰에 고소하자, 그는 합의를 종용하며 더 집요하게 스토킹을 이어왔고, 검찰이 징역 9년을 구형한 이 사건 선고를 하루 앞두고 피해자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유족의 말처럼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서, 그것도 유동인구가 많은 시간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이 교수는 스토킹처벌법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스토킹처벌법이) 친고죄라 피해자와 합의하면 사건이 철회된다. 이 때문에 스토커들이 계속 피해자를 쫓아다니면서 합의를 종용하며 협박한다는 얘기는 입법할 때부터 얘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경찰에서 기껏 한 달 동안 신변보호해 주고는 결국에는 이게 친고죄, 피해자의 고소사건이라는 이유 때문에 제대로 수사조차 하지 않은 사건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피해 역무원...왜 신변보호조치 한 달만 요청했나

15일 오후 전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모씨가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뒤쫓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 전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모씨가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뒤쫓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시민들이 추모 메시지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이 사건 발생 전 용의자 A씨와 피해자 B씨가 보인 행동 중 얼핏 대중이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 있다. 먼저 피해자 B씨. 그는 불법촬영으로 A씨를 최초 신고한 지난 해 10월, 한 달가량 경찰의 신변보호조치를 받았지만 이후 보호조치 연장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변에 위협을 느낄 때 경찰에 연락하는 '스마트 워치' 착용도 거부했다. 왜 스토킹에 시달리면서도 경찰의 보호를 뿌리친 걸까.

이 교수는 관련법을 뜯어보면 이 또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감시의 대상이 일단 잘못됐다"면서 "(경찰이) 스토커를 감시해야 되는데 스토킹 피해자를 감시하는 제도를 운영하다 보니까 스토커는 벌건 대낮에 막 돌아다니는데, 제재할 수가 없다"고 짚었다. "피해자가 일상생활에 불편할 수 있는 정도로 경찰이 연락하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한 달 정도 큰일이 없으면 대부분 괜찮다며 종결 요청을 할 수가 얼마든지 있다"는 말이다.

이 교수는 사법당국의 가해자 감시가 '의지 부족"이라고도 덧붙였다. "코로나19 초기 확진자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을 깔아서 전부 위치 추적했다. 감염자가 집 밖으로 나가면 지자체가 전화했다"면서 "그 정도의 앱 개발이 어렵지 않을 텐데 왜 스토커의 휴대폰에 앱을 깔아서 피해자 접근을 확인하지 않는지, 그런 방안은 왜 생각지 않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꼬집었다.

법원은 범죄자 인권 '최대한 보호'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가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호송되고 있다. 뉴스1

신당역 살인사건 피의자가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호송되고 있다. 뉴스1

다음은 용의자 A씨. 그는 1심 선고를 앞두고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한 날 밤, 범행을 저질렀다. '이 심리는 도대체 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이 교수는 "그걸 따지기 전, 우리나라 사법제도가 피고인에게 얼마나 인권 보호적인지"를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원에 제출한 반성문은 A씨의 심리라기보다 법원이 "피고인에게 방어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다 주는 것"을 상징한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법원은 이분이 주소가 분명하고 전문직이었다는 것 때문에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면서 "경찰은 상습 스토킹인데도 (추가) 구속영장 청구도 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결국 (스토커가) 모든 재판에서 유리할 수 있는 정황을 다 선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라는 말이다.

영장 청구에 대해서는 경찰도 할 말이 있다.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 주거 부정 같은 현행법상 구속 사유로는 스토커 A씨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염윤호 부산대 공공정책학부 교수 등이 '한국경찰학회보'에 발표한 '피해자 신변보호제도 개선에 대한 경찰관의 인식 연구' 논문에 따르면, 경찰 10명 중 8명이상이 구속 사유에 '피해자‧참고인 위해 우려'를 구속사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구진이 지난해 10월 경찰관 3,17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2,652명(83.6%)이 이렇게 답했는데, '피해자에 대한 보복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접근금지 명령 등 피해자 보호조치는 경찰관들조차 4명 중 1명(24.6%)만이 '충분하다'고 답했다.

이 교수도 이번 사건이 경찰의 과실 때문만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성폭력 사건도 처음에 친고죄였다. 친고죄가 폐지되고 나서야 경찰도 강제력을 동원해서 휴대폰도 압수수색할 수가 있다. 경찰의 과실을 과도하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친고죄 폐지를 해서 경찰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국회에서 법률 개정을 해줘야 구현될 수 있다. 그런데 (개정이) 잘 되지가 않는데다가 지금 경찰은 수사권 조정 등 현업이 복잡하다 보니까 이 사건을 놓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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