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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사랑했지만, 군주제 지지는 아냐"… 가열되는 스코틀랜드 독립 열망

입력
2022.09.13 21:0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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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왕 서거로 영국 묶는 구심점 사라져
스코틀랜드인 35% "공화국 설립 적기"
자치정부 내년 10월 독립투표 재추진

11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국왕 찰스 3세 즉위 선포식을 지켜보던 한 시민이 "지금 당장 공화국"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에든버러=로이터 연합뉴스

11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국왕 찰스 3세 즉위 선포식을 지켜보던 한 시민이 "지금 당장 공화국"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에든버러=로이터 연합뉴스

“우우우~”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운구 행렬을 맞이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로열 마일(옛 왕가 전용도로) 주변에서 11일(현지시간) 수십만 추모 인파를 뚫고 작은 야유가 흘러나왔다. “지금 당장 공화국” “민주적 미래를 위한 공화국”이라는 문구도 등장했다. 한 여성은 “망할 제국주의” “군주제 폐지”라고 적힌 손팻말을 치켜들었다가 경찰에 구금됐다.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모든 사람이 군주제에 동의하진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여왕 서거로 스코틀랜드 독립 열망 가열

여왕은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눈을 감았고, 열흘간의 장례 일정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됐다. 여왕의 시신이 안치된 관이 대중에게 가장 먼저 공개된 장소는 스코틀랜드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 가장 먼저 조문할 기회를 얻은 이들도 스코틀랜드 주민들이다. 생전 스코틀랜드에 관심과 애정을 아끼지 않은 여왕을 스코틀랜드인들도 깊이 존경했다. 운구차가 지나는 거리마다 여왕에게 바치는 꽃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여왕에 대한 사랑이 곧 군주제 지지이거나 영국(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연합왕국)에 대한 충성심은 아니다. 오히려 여왕 서거를 계기로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은 새로운 동력을 얻었고, 공화국 전환 논쟁도 다시 가열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과 일간 가디언 등이 12일 진단했다.

고인에 대한 존경과 독립국가에 대한 열망은 별개라는 얘기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스코틀랜드 주요 언론 더헤럴드는 1면에 새 국왕인 찰스 3세 사진을 게시하면서 ‘연방의 구세주인가,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인가’라는 헤드라인을 달기도 했다.

스코틀랜드는 1707년 연합법을 통해 영국의 일원이 됐지만, 영국 다른 지역에 비해 전통적으로 군주제에 회의적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장년층과 달리 왕실과의 연관성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고 로이터통신은 분석했다. 사업가인 33세 남성은 새 국왕 선포 행사를 보면서 “21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12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궁전을 떠나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으로 향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운구 행렬. 스코틀랜드인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와 여왕을 배웅했다. 애든버러=로이터 연합뉴스

12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궁전을 떠나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으로 향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운구 행렬. 스코틀랜드인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와 여왕을 배웅했다. 애든버러=로이터 연합뉴스


스코틀랜드 운명 스스로 결정해야… 독립투표 재추진

최근 민심도 이러한 기류를 반영한다. 영국 싱크탱크 ‘브리티시 퓨처’가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스코틀랜드인 45%만이 군주제를 지지했다. 영국인 전체 응답 비율이 60%인 것과 대조적이다. 또 스코틀랜드인 36%는 “여왕 통치가 끝날 때가 공화국 설립에 적기”라고 답했다. 스코틀랜드 언론인 앨릭스 마시는 일간 더타임스 기고에서 “일부 스코틀랜드인들은 한 시대의 종말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순간으로 여길 것”이라고 짚었다.

영국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 됐던 여왕과 달리 찰스 3세가 그다지 인기가 없다는 점도 변수다. 향후 왕실이 스코틀랜드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독립운동이 더 힘을 얻을 수도 있다. 데일리 메일은 “여왕이 떠난 이후 영국이라는 연합왕국은 더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했고, 가디언도 “찰스 3세는 여왕에 대한 애도를 군주제 지지로 전환할 수 있을지 숙제를 안게 됐다”고 평했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12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기리는 철야 경호를 하고 있다. 에든버러=AFP 연합뉴스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12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에서 8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기리는 철야 경호를 하고 있다. 에든버러=AFP 연합뉴스

앞서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을 묻는 국민투표는 찬성 45%대 반대 55%로 부결됐다. 그러나 2016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이후 독립 지지 여론이 늘어나는 추세다. 스코틀랜드에선 유럽연합(EU) 잔류 의견이 다수였음에도 인구가 많은 잉글랜드의 투표 결과에 따라 탈퇴하게 됐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의 운명이 잉글랜드와 보수당 정부에 의해 좌우된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존 커티스 스트래스클라이드대 정치학 교수가 최근 6개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해 ‘모르겠다’는 답변을 제외한 찬성 여론은 평균 49%, 반대는 51%로 나타났다. 8년 전 투표 결과보다 찬반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지난해 5월 스코틀랜드 의회 선거에서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과 녹색당 등 독립을 지지하는 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내년 10월 19일에 독립 투표를 재실시하겠다고 선언해 영국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영국 대법원은 다음 달 11, 12일에 스코틀랜드 의회가 영국 연방의회 승인 없이 국민투표를 실시할 권한이 있는지를 심리할 예정이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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