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신적 지주' 영면..."한 시대가 저물다" 전세계 추모 물결

입력
2022.09.12 21: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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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재위 70년...영국인 대부분의 삶과 겹쳐
찰스 왕자 불륜으로 왕실 폐지 여론 등 잡음도


8일(현지시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생전 모습. 영국 왕실 제공

8일(현지시간)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생전 모습. 영국 왕실 제공

"한 시대가 저물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를 영국은 물론, 전 세계는 이렇게 표현했다. 70년 동안 재위한 여왕은 영국 현대사 그 자체였고, 많은 영국인에게 자부심이었다. 재위 기간 잡음도 적지 않았지만, 전 세계에서는 영국의 상징이면서도 소탈한 그의 삶을 추모하는 물결이 크게 일었다.

"평화롭게 떠났다"… 英 최장 군주이자 영연방 구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8일(현지시간)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96세 나이로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여왕은 아버지 조지 6세가 폐암으로 갑작스럽게 서거하며 1952년 26세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은 70년 214일, 영국 역사상 최장 기간이다. 영국인 대부분의 생애가 여왕과 함께였던 셈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거친 총리는 윈스턴 처칠부터 리즈 트러스 신임 총리까지 15명에 달한다.

여왕이 존재만으로도 '영국의 상징'이었다는 평가는 그래서 자연스럽다. 트러스 총리는 여왕의 서거 직후 "여왕은 바위였다. 그 위에서 현대 영국이 건설됐다"며 "여왕은 영국의 정신이었고, 그 정신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여왕은 동시에 영연방을 묶는 구심점이었다. 영국 여왕은 53개국이 참여하는 영국연방(영연방·Commonwealth)의 수장이자, 영국을 포함,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15개국의 군주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대영제국이 내리막길을 걷던 상황에서 왕위에 올랐지만, 영국의 영향력과 존재감을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53년 대관식 직후 6개월간 영연방 순방에 나서며 결속을 다졌다. 평생에 걸쳐 모든 영연방 국가를 적어도 한 번 이상 방문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국의 자부심이자, 국제사회의 지도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여왕'이라는 자리보다는 그가 평생에 걸쳐 보였던 헌신과 모범에 기반한다는 평가가 많다.

왕실 권위주의 타파에도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다. 1992년 윈저성 화재 복구 사업에 드는 천문학적 비용을 두고 논란이 커지자 여왕은 스스로 면세 특권을 내려놓는 결단을 내렸다. 대중에게도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다. 1970년에는 바비큐 파티를 하는 모습이 담긴 '평범한 가족'의 모습을 공개해 인기를 얻었다. 유머를 겸비한 품위 있는 모습도 여왕이 국민적 사랑을 받게 한 요소로 꼽힌다. 왕위를 승계한 찰스 3세가 첫 대국민 연설과 즉위식에서 "어머니를 본보기로 삼겠다"고 강조한 이유다.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궁 앞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기리는 꽃을 든 아이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런던=AFP·연합뉴스

8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궁 앞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기리는 꽃을 든 아이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런던=AFP·연합뉴스


전 세계 추모 물결… "영국의 위안이자 자부심의 원천"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추모 물결이 일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 포고문을 통해 "엘리자베스 2세는 한 명의 군주 이상이었다. 영국인들에게 위안이었고, 자부심의 원천이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여왕이 아낌없는 봉사의 삶을 살았다"는 내용을 담은 전보를 찰스 3세에게 보냈다.

생의 마지막까지 뜨거운 인기를 확인한 여왕이었지만, 재위 기간 잡음도 적지 않았다. 찰스 3세가 국민적 사랑을 받던 다이애나비와의 끊임없는 불화설 끝에 결국 이혼하고, 이후 다이애나비가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땐 왕실 폐지론이 일기도 했다. 당시 이혼 원인이 현 아내인 카밀라 파커볼스 왕비와의 불륜이라고 지적됐기에 찰스 3세 부부에 대한 대중적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2020년 왕실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손자 해리 왕자는 10대 때부터 대마초∙음주 문제로 구설에 오르는 일이 잦았고, 그의 부인인 메건 마클은 영국 왕실로부터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지난해 폭로하며 왕실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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