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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심점 사라진 옛 식민지 연합체 '영연방'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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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로, 과거 영국 식민 지배를 받은 국가들의 연합체 ‘영연방(Commonwealth)’의 운명도 주목 받고 있다. 여왕이 70년 넘게 재위하면서 이들을 한 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해 온 탓에, 그 틀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진다.
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영연방의 상징이자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강력한 구심력을 행사해 왔다. 영연방은 영국과 영국의 식민지였던 독립국 56개국으로 구성된 느슨한 형태의 연합체로, 영국 국왕이 ‘국가 수장’을 맡는 나라는 영국을 포함해 15개국에 달한다.
여왕은 왕위에 오르기 전인 194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평생 영연방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발표했고, 1952년 즉위 후 각국을 방문하며 결속력을 높이는 등 연방의 유지를 위해 노력해 왔다.
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만 해도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와 싸워 이김으로써 세계 평화를 지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후 영국은 차츰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잃었고, 과거 화려했던 제국주의 군주국의 모습도 퇴색한 상태다.
때문에 미국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영연방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맞아 거대한 전환의 시기를 맞게 됐다고 짚었다. 매체는 “영국 연방은 후기 식민국 클럽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며 “여왕의 죽음으로 가입국들이 연방에 더 많은 의문을 품고, 거리를 두려 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더해 영국의 식민지배 경험이 있는 나라들은 제국주의에 뿌리를 둔 영연방을 비판적으로 여기게 됐고, 일부 나라는 연방과의 연대를 새삼 재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연방 핵심 구심점 역할을 한 여왕이 서거하면서 원심력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뒤를 이은 찰스 3세는 여러모로 어머니보다 카리스마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해 4월 영연방인 캐나다에서 이뤄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5%는 “찰스 왕세자는 왕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영국 식민지였던 카리브해 국가에서는 영국 왕을 수장으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노예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지난해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가 독립 55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더는 여왕을 섬기지 않게 됐다. 군주제에서 탈피해 공화제를 택하려는 움직임은 자메이카, 바하마, 벨리즈 등 다른 카리브해 국가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실제 윌리엄 왕세자 부부가 올 3월 이들 카리브해 3국을 찾았으나 과거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과 노예제의 사과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직면해야 했다. 자메이카 총리는 공화정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벨리즈에서는 왕세자가 후원하는 재단과 토지 분쟁을 겪는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자메이카에서 지난달 시행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6%가 영국 왕을 원수로 삼는 군주제의 폐지에 찬성했다.
카리브해 섬나라 세인트루시아 총리를 지낸 앨런 채스터넷은 로이터에 “공화국이 되는 것을 확실히 지지한다”고 말했다. 바하마 국립배상위원회 니암비 홀 캠벨은 “군주의 역할이 바뀌었다"며 “여왕의 서거는 우리 지역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논의를 진전시킬 기회”라고 강조했다.
유럽 제국주의가 한창이던 15∼19세기 아프리카인 1,000만명 이상이 백인 노예상에 의해 카리브해로 강제 이주했고, 플랜테이션 농장 등지에서 노동착취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야 재서노프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는 NYT 기고문에서 “여왕은 떠났고, 제국주의 군주제도 끝나야 한다”며 “후계자인 찰스 3세는 여왕의 역할이 세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새로운 왕은 왕실 권위를 축소해 영국 왕실을 북유럽 왕실처럼 바꾸는 역사적인 결정을 할 기회를 맞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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