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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2, '리니지 라이크' 욕은 먹지만 VIP 핵과금 몰려 '히트' [게임연구소]

입력
2022.09.12 09:00
수정
2022.09.1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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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최신작, 부정적 평가에도 매출 1위
상위 0.15%가 매출 40% 책임지는 특성
'포켓몬고'처럼 넓은 저변 중요한 경우도

넥슨의 모바일 신작 게임 '히트2'. 넥슨 제공

넥슨의 모바일 신작 게임 '히트2'. 넥슨 제공

지난달 25일 첫 선을 보인 모바일 게임 기대작 '히트2'. 'V4' 등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에 일가견이 있는 넥슨의 야심작으로, 출시 전부터 이용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액선 롤플레잉게임(RPG)을 표방했던 전작 '히트'와 달리 MMORPG로 장르가 바뀌면서 이용자의 과금을 유도하는 전형적인 '리니지 라이크(리니지와 비슷한 게임성과 과금 구조)'라는 평가를 받았다. 언리얼엔진4로 개발돼 수준 높은 게임 그래픽 퀄리티를 보여줬지만, 사용자 인터페이스(UI)나 스토리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이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리니지', '오딘: 발할라 라이징' 등에 뒤쳐진다는 반응이 다수였다.

시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기대 이하의 결과물에 게임 출시 당일, 히트2의 개발을 맡았던 넥슨의 자회사 넥슨게임즈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16.86%(3,600원) 폭락한 1만7,750원에 거래를 마쳤다.

그런데 시장 평가와 달리 매출은 정반대였다. 게임업계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히트2는 돈을 쓸어담았다. 히트2는 오픈 12시간 만에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를 기록했으며, 출시 일주일만인 지난 1일에는 구글 플레이에서도 리니지를 누르고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욕은 많이 먹지만 늘 기대 이상의 매출은 보장하는 리니지 라이크 게임에는 극소수의 '핵과금러(고과금 이용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VIP만을 좇는 게임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0.15%의 이용자가 41% 이상의 매출에 기여한다.'

2016년 흥미로운 내용의 보고서가 공개된 적 있다. 빅데이터 플랫폼 모바일인덱스가 그해 상반기 구글플레이 모바일게임 매출을 분석한 것으로, 전체 유저의 0.15%가 전체 매출의 4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였다. 이들이 바로 게임 시장의 큰 손인 핵과금러들이다. 모바일 게임 이용자 중 결제를 진행한 게이머는 전체의 4.7%로 이 중 100만 원 이상, 즉 높은 금액을 결제한 이용자는 3.2%에 불과했다. 이는 반대로 95%가 넘는 이용자가 '무과금'으로 게임을 즐긴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극소수의 고과금 이용자가 게임업계 매출을 지탱하는 구조는 '현재진행형'이다. 8일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매출 상위권을 차지한 '리니지M(1위)', '리니지W(2위)', '오딘: 발할라 라이징(4위)' 등은 사용자 수 순위에서는 50위 안에도 들지 못했다. 이는 히트2도 마찬가지다. 굳이 많은 이용자를 모으지 않아도 돈 많이 쓰는 VIP만 모을 수 있다면 상당한 매출이 보장된다는 의미다. 게임업계에서 유독 이용자와 게임사의 마찰이 잦은 이유도 다수의 유저가 바라는 서비스 방향과 극소수의 고과금 이용자가 원하는 요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잘 설명하는 것이 바로 '파레토의 법칙'이다. 파레토의 법칙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 즉 소수의 상위 계층이 전체 현상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19세기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는 영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소득 통계를 조사하던 중 당시 영국 인구의 약 20%가 영국 전체 부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일본 곤충학자 하세가와 에이스케는 곤충 세계에서 이와 비슷한 현상을 찾아냈다. 그가 개미를 관찰한 결과 개미의 20% 정도만 열심히 일을 하고, 나머지 70% 정도는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자기 몸을 핥거나 하릴없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루마니아의 품질 경영 컨설턴트 조셉 주란은 이런 현상이 기업 경영에서도 나타난다며 파레토의 이름을 따와 경영학에 적용한 것이 바로 파레토의 법칙이다.

이후 파레토의 법칙은 경영 전략이나 마케팅 기법으로 다양하게 활용됐는데, VIP 마케팅이 대표적이다. 매출의 절반 이상이 극소수의 VIP 고객에서 나오는 만큼 이들을 위한 제품이나 특별 매장, 별도의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 파레토의 법칙이 적나라하게 적용되는 것이 바로 게임업계인 것이다.

"아직도 포켓몬GO 하는 사람이?"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등 세계 각지에서 이용자들이 모바일 게임 '포켓몬GO'를 즐기고 있다. EPA·AFP=연합뉴스

영국 런던, 독일 베를린 등 세계 각지에서 이용자들이 모바일 게임 '포켓몬GO'를 즐기고 있다. EPA·AFP=연합뉴스

그런데 매출의 대부분이 극소수의 고과금 이용자에게 나온다고 해서, 나머지 80%의 이용자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걸까.

'극소수의 20%' 대신 '평범한 80%'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현상으로 '롱테일(Long Tail)의 법칙'이 있다. 롱테일 법칙은 파레토 법칙과 반대로, 80%의 사소한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창출한다는 이론이다. 오랫동안 소홀히 취급했던 이용자의 매출이 단기적으론 적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꾸준한 수준을 유지해 결과적으로 기업에 수익을 주는 현상으로, 이를 그래프로 표현하니 마치 공룡의 긴 꼬리(Long Tail)처럼 보인다고 해서 롱테일 법칙으로 부른다.

지난 2017년 출시된 모바일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GO'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세계적인 인기 지적재산권(IP)인 '포켓몬'과 당시로선 혁신적이었던 AR 기술이 결합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리에서 포켓몬을 잡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 때의 열풍 같았던 포켓몬GO의 인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부담 없는 과금 구조와 게임성으로 '평범한 80%'를 공략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기준 모바일 게임 전체 매출 순위에서 포켓몬GO는 27위에 올랐지만, 지금도 월간 사용자 수 200만 명을 기록하며 사용자 수에서는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포켓몬GO 외에도 사용자 수에서 상위권에 올라 있는 '로블록스(2위)', '브롤스타즈(3위)', '쿠키런 킹덤(6위)' 등은 매출에서 50위권 내에서 선전하고 있다.

경영학계에서는 파레토의 법칙과 롱테일의 법칙 중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두 법칙 모두 자연 현상을 관찰해 이를 현실에 적용한 것으로 기업이 처한 환경에 따라 효과적인 전략이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트2의 성공은 국내 게임업계가 유독 한쪽으로만 치우쳐 가는 것만은 아닌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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