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온전한 삶을 위해 여생을 포기한 여성

짧지만 온전한 삶을 위해 여생을 포기한 여성

입력
2022.09.1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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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 릴리 엘베

성전환수술을 받기 전인 1926년 무렵의 릴리 엘베. 위키피디아

성전환수술을 받기 전인 1926년 무렵의 릴리 엘베. 위키피디아


릴리 엘베(Lili Elbe, 1882.12.28~ 1931.9.13)는 1930년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항생제 페니실린이 발견된 지 불과 2년 뒤였고, 장기 이식 수술이 처음 성공한 것도 24년 뒤인 1954년(신장)이었다. 그는 고환과 음경 절제, 인공 질 형성 등 5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았고, 마지막 자궁 이식 수술 후 인체 면역(거부)반응과 감염증으로 숨졌다.

그의 의료 기록과 생애를 재구성할 수 있는 자료는 1930년대 나치에 의해, 또 2차대전 중 대부분 사라져 여러 이견이 존재하지만, 그의 일기와 편지 등 일부가 유실되지 않고 남아 훗날 자서전 형태의 책으로 발간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덴마크 남부 바일레(Vejle)에서 태어나 왕립예술아카데미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는 후기인상주의 화풍의 풍경화가로 꽤 명성을 얻었다. 그는 인물화와 잡지 삽화가로 활동한 게르다 고틀리프(Gerda Gottlieb)와 1904년 결혼했다.

1908년 어느 날 그는 아내 고틀리프의 모델이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여자 모델 역할을 하게 됐다. 그는 처음 해본 여장이 썩 편했고, 거울 속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여장을 한 채 화실 바깥 나들이도 하게 됐고, 자신의 새로운 페르소나에 ‘릴리’라는 이름도 선사했다.

그의 ‘기행’이 스캔들처럼 번지자 부부는 1912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고, 엘베는 불행했다. 자살까지 생각하던 그는 한 의사의 수술 권유를 받았고, 1930년 독일 베를린과 드레스덴 등지의 외과 산부인과 의사의 도움으로 수술을 감행했다. 마지막 수술을 받았던 드레스덴 병원 창밖 엘베강을 보며 그는 새 삶의 시작을 선언하듯 자신의 성을 '엘베’로 고쳤다. “(여자의 몸으로 산) 14개월은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비로소 온전히 행복한 인간의 삶을 누릴 수 있었다”고 썼다.

그는 독일인 도라 리히터(Dora Richter, 1891~?)와 더불어 세계 최초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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